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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East and N. Africa 여행/이집트

하트셉수트 장제전 Mortuary Temple of Hatshepsut의 3층 테라스 모습~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3층 테라스에 올라서 본 오시리스 기둥 모습이다.

 

 

3층 테라스의 복도에는 22개의 네모 기둥이 서 있고 기둥의 일부가 오시리스 기둥인데,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이 신상들이 서 있는 기둥이 바로 그 오시리스 기둥이다.

 

 

 

 

 

 

 

고대 이집트 신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는 오시리스의 재생, 부활 신화라고 한다.

 

 

'신의 시대'의 최초의 신왕은 태양신 라였고, 신들과 인간들이 지상에서 함께 살았던 이 시대의 이집트는

 

지상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신 라는 인간을 말살하려 했던 대소동이 있은 뒤, 왕위를 대기의 신

 

슈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돌아갔고 슈에 이어 왕위는 땅의 신 게브를 거쳐 신 오시리스가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는 게브와 누트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남매 중 장남이었고, 오시리스는 누이동생 이시스와 동생 세트는

 

막내 여동생 네프리스와 결혼을 하여 남매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오시리스는 흰 옷을 입은 죽은 자의 몸에 머리는 상 이집트의 흰 왕관과 마아트의 깃털로 장식한 왕관을

 

합쳐서 이중 왕관 아테프 Atef를 쓰고 손에는 통치권을 상징하는 갈고리와 도리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오시리스는 이집트를 훌륭하게 다스렸고 고대 이집트인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았는데, 왕위를 탐낸 동생

 

세트는 음모를 꾸며 오시리스를 살해하고 유해를 나일 강에 버렸고, 슬픔에 잠긴 그의 아내 이시스는 유해를

 

찾아 헤매다가 시리아에서 찾아 이집트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세트는 오시리스의 시신을 다시 빼앗아 열네 토막을 내어 전국 곳곳에 버렸고, 이시스는 다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그의 유해 조각을 모았는데 이때 물고기가 삼켜버린 성기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시스는 신 아누비스 Anubis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의 유해를 미라로 만들고 토트 신의 도움을 받아 주술로

 

미라가 된 오시리스를 부활시켰고, 이때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져 나일 강의 습지에서 아들 호루스를

 

낳았다고 한다.

 

 

성장한 호루스는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와 싸워 이겨 지상의 왕이 되었고, 이시스가 성기 없는 오시리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부활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세트는 신들의 회의에 호루스는 왕이 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으나 신들은 직접 성행위가 없어도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려서 호루스는

 

지상의 왕이 되고 오시리스는 명계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처녀 잉태, 죽은 자의 부활, 내세에서의 영생 등 몇 천 년 후에 탄생한 일신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시리스 기둥 뒤의 기둥 홀 모습이다.

 

 

 

 

 

 

 

기둥 홀 뒤의 성소 입구다.

 

 

 

 

 

 

 

복도 앞 안마당의 북쪽에 태양신 라 호르아크티의 성소, 남쪽에 투트메스 1세의 성소, 하트셉수트 여왕의 성소,

 

 

태양신 아멘-라의 암굴 성소로 구분된다고 한다.

 

 

 

 

 

 

 

국가최고신 아멘-라와 앙크를 든 파라오의 모습이 선명한 둥근 천장 아래의 벽화 모습이다.

 

 

이곳에도 세마타위 Samtaui 의식에 대한 벽화가 새겨져 있는데, 이 의식은 상하 이집트의 상징

 

로터스와 파피루스를 나일의 신 하피가 하나로 묶는 의식으로 두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한다.

 

 

 

 

 

 

 

신전에 새겨진 벽화들 모습이다.

 

 

 

 

 

 

 

 

 

 

 

둥근 천장의 그림들이다.

 

 

각종 새들과 식물에 대한 돋새김도 많이 보인다.

 

 

 

 

 

 

 

 

 

 

 

이중관을 쓴 국가최고신 아멘-라 모습이다.

 

 

앙크를 두 손에 든 머리 없는 석상도 있고~

 

 

 

 

 

 

 

통행이 제한된 석굴이다.

 

 

 

 

 

 

 

성소 밖 모습이다.

 

 

 

 

 

 

 

이집트의 고왕국와 중왕국시대에는 기자의 피라미드나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에서 볼 수 있듯이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곳에 장제전을 함께 만들어 피라미드 복합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왕국시대에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서 파라오의 무덤과 떨어져서 장제전을 만들었고,

 

파라오의 무덤은 나일 강에서 떨어진 사막의 깊숙한 바위 골짜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장제전은 무덤의 동쪽, 무덤과 나일 강 사이의 녹지대에 신전 못지않게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장제전을 죽은 파라오의 재생, 부활을 기원하는 장소로만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여러가지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제18왕조의 하트셉수트 여왕은 장제전을 여왕의 공적을 홍보하는 기념 신전으로

 

사용했고, 람세스 2세는 장제전을 추운 겨울을 피해 거주하는 이궁 離宮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3층 테라스의 오시리스 기둥 앞에서의 기념사진이다.

 

 

 

 

 

 

 

3층 테라스에서 본 장제전 앞 모습이다.

 

 

 

 

 

 

 

 

 

 

 

장제전의 돌무더기에서 한 청년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파괴된 석조물들에 새겨진 돋새김이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비탈길을 내려가는 모습이다.

 

 

이 하트셉수트 장제전 곁에 폐허가 된 중왕국 제11왕조의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터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이 그 터인가~?

 

 

 

 

 

 

 

하트셉수트 장제전을 즐기는 서로 다른 동서양의 처자들 모습이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을 나서는 모습이다.

 

 

장제전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 너머에 왕들의 계곡이 있으며 하트셉수트 여왕의 무덤도 그곳에

 

있다고 한다.

 

 

 

 

 

 

 

장제전 앞의 기념품 상가 모습이다.

 

 

 

 

 

 

 

이제 또 다른 장제전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