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보물실은 수천 년 동안 제작된 이집트 보석 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다.
금은을 포함해 다양한 보석들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이 내뿜는 강렬한 채색은 이집트 신화와 각종 상징들의
의미를 전하고 있는데, 세련된 디자인, 깊은 상징적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큰 변화 없이 지속되어 온 양식의
통일성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보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망자의 무덤에 보물을 함께 묻곤 했다. 이런 이유로 아주 옛날부터 이들 보물을 노린 도굴꾼들에
의해 파라오의 고분은 물론이고 기타 다른 묘와 신전 등이 여러 차례 도굴을 당했다.
특히 미라가 있는 고분의 경우에는 도굴이 심해 상당한 양의 유물들이 약탈당했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채 땅 속에
묻혀 있는 보물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되어 도굴된 것과 합하면 이집트의 보물은 우선 그 규모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
라고 한다.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공예품들이다.
이집트 인들은 귀금속과 보석에 마술의 힘이 있다고 믿었고 늘 상징성을 부여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공예품의 재료가 되는 금속을 선택할 때나 형태를 만들 때 언제나 제의적 가치를 가장 먼저 염두에 두었는데
금은 신의 금속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이집트 인들은 신들의 형상을 제작할 때 팔다리는 금으로, 두발은 청금석
으로 제작하곤 했다고 한다.
이집트는 금광이 많은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예부터 노예나 군인들을 동원해 많은 금을 채굴할 수 있었는데,
순금을 얻기가 쉽지 않아 시간이 흐르면서 변색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은의 경우는 조각상의 특수한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은은 일반적으로 달을 상징하는 금속으로 여져졌는데, 이집트에서 생산되지 않아 아시아
국가들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했다고 한다.
기법적으로는 상감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때는 단단한 준보석류의 돌들이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때론 유리 가루에 물감을 섞어 반죽을 만든 다음 홈에 집어 넣는 식으로 상감을 하기도 했다고 하고~
금은 세공사들은 탄산구리와 송진 등을 이용한 용접 기술을 알고 있었고, 장르별로 보면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가슴 장식, 발목 팔찌, 혁대 등 현대인들이 착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전시되어 있는 각종 신들의 모습이다.
미라에 씌워져 있던 손톱, 발톱 공예품이다.
파라오 모습이다.
금으로 만든 매의 형상을 한 태양신이다.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는 왕의 계곡 제55호 고분-아케나톤의 관이다.
미라의 얼굴에 씌워졌었던 황금 마스크 들이다.
화려하고 정교하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다.
파라오의 캐노푸스 단지 canopic jars들이다.
파라오의 무덤에서 출토된 보물들을 담아 놓았던 목제 상자들인데 외부에 화려한 금박으로 신들의 모습을
장식해 놓았다.
파라오와 신관 부부의 조각상이다.
신왕국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4세로 아크엔아텐 Akhenaten 파라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멘호테프 4세와
아크엔아텐은 동일 인물로 유일신인 아톤 신을 섬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양손에 파라오의 상징을 들고 있는 팔을 교차시켜 가슴에 모으고 있고, 팔찌와 복부에는 "아톤 신 속에
들어 있는 빛의 지평선을 향유하시는 레 호라크티 신이여 영원하라"라는 글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카르나크 신전 인근에서는 많은 수의 아멘호테프 4세의 상이 발견되었고 어느 상이나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중성적 조각들로, 이는
아멘호테프 4세가 백성들에게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간주되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중성적 조각들로, 이는 아멘호테프 4세가 백성들에게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간주되길 원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실제 아멘호테프 4세는 이런 중성적인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계속되는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파라오들의 잦은 근친혼으로 이런 기형적인 외모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후대인 제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투탕카멘은 연약한 소년 파라오가 아닌 강력한 군주로써 해외 원정 도중에
사망했고, 전투 중 사망 이유 중 하나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불구의 다리를 꼽고 있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신왕국 제18왕조 아멘호테프 4세 (Amenhotep IV: B.C. 1351~1334)인 유일 신 아텐을 찬양하는
아크엔아텐 Akhenaten 모습이다.
신왕국시대에 아멘 신관들의 권한이 너무 커져 파라오가 되기 위해서는 신관들의 지지를 얻어야 할 정도로
왕권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에 아멘호테프 4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아멘 신관들의 존립기반이었던
국가 최고신 아멘을 비롯하여 몇 천 년 동안 섬겨온 고대 이집트의 모든 신들의 신앙을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고
한다.
대신에 그는 '신은 태양신 아텐뿐이다'라고 선언하고 아텐 만을 신앙토록 했다고 한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종교 개혁이며 다신교를 일신교로 바꾼 '아마르나 종교 혁명'이라고 한다.
태양신 아텐은 원래 태양신 라-호르아크티 Ra-Horakhty의 일부였으나 독립하면서 그 지위가 향상되어
태양신과 동등하게 되었고, 고대 이집트의 신들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몸에 동물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의인화해서 표현되었는데, 아텐은 태양 원반에서 태양의 빛이 지상으로 내려 비치는 모양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숭배의 대상이 빛을 내보내는 태양 원반 그 자체였고, 아텐 만은 다른 신들처럼 의인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멘호테프 4세는 파라오의 이름도 '아텐의 빛'이라는 뜻의 아크엔아텐 Akhenaten으로 바꾸었다고 하고~
몇 천 년 동안 많은 신을 믿어온 다신교의 세계에서 일신교로 바꾸려 했던 아크엔아텐의 종교 개혁은 후에
유대교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집트학에서 고대 이집트 왕조의 5대 인물로 아크엔아텐, 네페르타리, 클레오파트라, 투탕카멘, 람세스 2세를
꼽고 있는데, 그중 으뜸이 아크엔아텐이라고 한다.
그는 고대 이집트 왕조에서만이 아니라 '일신교의 원조'로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검은 돌로 만들어진 두상들이다.
히에로글리프로 돋새김된 석판들이다.
하토르 여신을 안고 있는 파라오 모습이다.
검은 돌로 제작된 서기상이다.
설화 석화로 돋새김된 벽면 조각들이다.
투트메스 3세의 하토르 제실이다.
신왕국 제18왕조 투트메스 3세 (기원전 1424~1397)의 하토르 여신상과 여신상이 놓여 있던 제실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이 되어 발굴 되었고, 옛날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채색이 된 채로 발굴되었다는데, 투트메스 3세가 부인과 함께
하토르 여신에게 공물을 봉헌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양쪽 벽에도 여인의 모습을 한 채 암소의 뿔과 태양을 상징하는 원반을 머리에 올린 하토르 여신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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