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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East and N. Africa 여행/이집트

클레오파트라의 무대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땅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길목의 이집트 풍경들이다.

 

 

덴데라, 룩소르, 에드푸, 콤 옴보, 아스완을 거쳐 이집트 최남단의 누비아 사막에 있는 아부 심벨까지 여행거리가

 

자그마치 1,000km에 이르는 먼 여행길이었다.

 

 

이제 남은 곳은 이집트 최북단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델타 지역의 몇몇 유적지인데, 그 델타 지역의 중심지랄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가는 길이다.

 

 

 

 

 

 

 

 

톨게이트가 보이는 걸 보니 드디어 알렉산드라로 들어서는 모양이다.

 

 

 

 

 

 

 

 

나일 강은 카이로를 지나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대평원을 이루며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일대가

 

예로부터 세계적인 곡창으로 이름난 나일 하류의 델타 지대이다.

 

 

하류는 지금까지 보아온 상류의 나일 곡창지대와는 지형, 기후, 풍토, 풍습이 아주 다르다.

 

 

 

 

 

 

 

 

델타 지대에도 파라오 시대의 유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대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비가 오기 때문에 습기가 많아 유적들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대부분이 풍화되어 황폐해 버렸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 있던 유적들은 잦은 외세의 침입으로 파괴되어 대부분이 없어졌다고 하고~

 

 

 

 

 

 

 

 

알렉산드리아 도심으로 들어서는 도로변 모습들이다.

 

 

 

 

 

 

 

 

나일 델타의 서부 가장자리의 지중해 연안에 자리한 알렉산드리아, 이곳은 마케도니아의 위대한 세계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 (Alexander the Great: B.C.336~323)이 세운 도시이며, 절세미인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 VII:

 

B.C.69~30) 여왕의 무대로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도시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군을 무찌르고 그 여세를 몰아 이집트를 점령한 것은 기원전 332년이었다고 한다.

 

오래 동안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로서 가혹한 지배를 받아왔던 이집트인들은 정복자인데도 알렉산더 대왕을

 

이집트 해방의 영웅으로 크게 환영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 서부 사막의 북서부에 자리한 시와 오아시스 Siwah Oasis의 아멘 신전에서 아멘 신의

 

아들이며 이집트의 지배자라는 신탁 神託을 받았고, 멤피스에서 대관식을 올리고 파라오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왕조시대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이집트를 다스린 대왕은 테베의 룩소르 신전 안에 신 아멘을 위한

 

새로운 성역을 건조하기도 했다고 한다.

 

 

 

 

 

 

 

 

델타 지대의 무성한 갈대숲과 나일강 모습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점령지에 자기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30여 개나 세웠다고 한다.

 

 

그중 제일 먼저 세웠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도시가 이곳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라고 한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를 부하 장군에게 맡기고 동방원정에 나갔다가 도중에 열병을 얻어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의 옛 궁전에서 갑자기 죽고 말았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33세였다고 한다.

 

 

대왕은 죽으면서 시와 오아시스의 아멘 신전에 묻히기를 원했으며 그의 유해는 멤피스에 안치되었다가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의 무덤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7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그리스로부터 인도까지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제국을 세웠고,

 

그의 동방원정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동서양 간에 문물의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융합하여 헬레리즘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되었고, 그 중심지가

 

알렉산드리아였다고 한다.

 

 

 

 

 

 

 

 

도로 건너편 나일 강 너머로 알렉산드리아의 건물들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간간히 보이는 송유탑이 이집트도 산유국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뒤 제국은 분열되었으며 기원전 305년 이집트는 그의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 라고스

 

Ptolemaeos Lagos 장군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열었다.

 

 

또한 알렉산드리아는 클레오파트라 7세가 태어나고, 여왕으로 군림하여 이집트를 다스리다가 자살한 역사의

 

무대이기도 한데, 기원전 69년 이곳에서 태어난 절세미인 여왕 클레오파트 7세는 파스칼 B.Pascal이 '그녀의 코가

 

한 치만 낮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절찬했던 여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 Helene만큼 아름다웠다고 하고~

 

 

 

 

 

 

 

 

드디어 알렉산드리아 시가지로 들어서는 모습이다.

 

 

 

 

 

 

 

 

도로 위의 넘쳐나는 차량 행렬과 함께 달리고 있는 마차의 모습이 여느 이집트의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도로와 무질서하게 달리는 차량들이 온통 혼을 쏙~ 빼놓는 느낌이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레코로만 시대의 수도로 천여 년 동안 이집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한 때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를 점령한 이슬람군이 수도를 카이로로 옮겨간 뒤로 알렉산드리아는 급속히 쇠퇴했고, 18세기 끝

 

무렵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상륙했을 때 알렉산드리아는 인구 8천 명의 작은 어촌으로 전락해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초, 이집트를 점령한 영국의 근대화 추진으로 알렉산드리아는 인구 6백만 명을 헤아리는 이집트 제2의

 

도시로 발전했다고 한다.

 

 

지금의 알렉산드리아는 이슬람 색이 짙은 카이로와는 다른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지중해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지중해의 향기가 짙고 그리스의 항구도시 같은 분위기가 넘치는 휴양지로 유명하다.

 

 

 

 

 

 

 

 

알렉산드리아의 대표 유적지 중 하나인 카타콤으로 향하는 골목길 모습이다.

 

 

 

 

 

 

 

 

오래된 도시답게 도로 주변의 건물들은 무척 낙후되어 있고 궤도가 깔린 도로 위는 각종 차량들로 넘쳐난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구시가지 도로 모습이다.

 

 

 

 

 

 

 

 

 

 

 

 

주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골목길 모습이다.

 

 

 

 

 

 

 

 

 

 

 

 

흥미롭기만 한 도로변 모습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카타콤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