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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Photo/Jungwon

생일날 딸이 보내 온 소식~

 

 

무 회의차 소집하는 줄 알고 들어섰는데

팀 동료들이 생일 축하 파티를 해 주었단다.

 

깜짝 이벤트로~~ㅎ

 

 

 

 

 

 

동료들과 기념 사진도 찍고

 

케익도 나눠 먹었다고 하고~

 

 

 

 

 

 

사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회사에서도 무척 배려해 주고 업무도 주도적으로 하고~

 

규모도 꽤 크고 전통이 100년이 넘는다는 회사인데 

입사 지원서를 냈을 때 연락이 안와서 회사에 전화를 했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는 모두 인터뷰 날짜도 알려오고 하는데 왜 연락이 없냐고~~

 

그렇게해서 며칠 후 인터뷰를 갖게 되었고 곧바로 채용되었다고 한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가능했을까~~?

 

당돌한 걸까?

아니면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당당함일까~~

 

 

렇게 입사한 회사에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회사의 지원으로 H-1B 비자 승인을 받고

국내의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때를 대비해서 변호사를 통한 두툼한 자료까지 준비해줬다는데

 

정작 인터뷰에서는 5분도 채 걸리지 않고 곧바로 비자를 발급해 줬다고 한다.

열심히 만들어 준 서류는 보여줄 필요도 없이 ~

 

 

 

 

 

 

뉴역 생활 중 가끔씩 보내온 사진들~

 

 

 

 

 

 

 

때 내가 거쳐온 일들을 포스팅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변화무쌍하고 변신을 많이 해 온 날들이라서~

 

게다가 딸들 이야기도 해볼까라는 생각도 해 보고~

 

 

히 이 애와 관련된 기억들은 참으로 많다.

 

초등 2학년 때 친구 엄마라며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OO파를 아시냐는데~

 

자기 보다 머리통 하나쯤은 더 큰 아이들을 몰고 다니고 팔로워가 20명이 넘는다는데

딸 이름을 딴 거란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ㅎ

 

반 회장은 도맡아 해 오며 전교회장은 싫고 부회장이 좋다며

부회장을 했던 일~

 

학교 대표로 그림 그리기에 나가서 대상을 받아 그 그림이 일본까지 건너갔고

한번도 그림 지도를 받아본 적이 없던 아이가 돌연 개인 지도 선생님을 붙여 달라고 해서 그리 했는데

 

중2의 딸 그림을 대입 입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지도한 선생님도 있었고

시집가서 자기가 낳은 아이 이름을 우리 딸 이름과 똑같이 지은 선생님도 있었다.

 

우리 애를 닮았으면 좋겠다며~~ㅎ

 

 

남녀공학 중.고등 시절 전반기 회장은 도맡아 하고

학교에서도 꽤 유명했었나 보다~

 

우리가 새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옆집 아주머니께서

우리 아이 학교를 물어보더니 자기 아들이 이야기하더란다.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옆집에 살아서~

우리 애와 동학년도 아니고 선배인데~~

 

식 자랑은 팔푼이라고 했는데

한번쯤 팔푼이가 돼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다.

 

 

 

 

 

 

 

처럼의 딸 자랑이니 화끈하게 해 보자.

허구헌 날 딸 자랑하는 팔푼이는 아니니~~ㅎ

 

또 한번쯤 팔푼이가 돼 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은 없지 않느냐는 생각도 들어서~

 

 

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올라가기 전 겨울 방학에

유학을 보내주면 가겠냐고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변~

기회를 주신다는데~~였다.

 

 

그렇게 간단히 진로는 결정되었고

그때부터 딸애의 무서우리만큼 집요한 유학 준비가 시작되었는데~

 

사실 큰 딸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국으로 유학을 가있는 상태라서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서 둘째의 유학은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아내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학 의사를 타진해 본 데에는 내 나름대로의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어 그것을 살려주고 싶었고

큰 딸과 둘째와의 형평성도 고려했지만

 

또 한가지~

 

학년이 높아가면서 연예계로의 진출 생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 감지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학 시절 소위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명함을 한장 받아 들고 온 적도 있었다.

 

무슨 기획사라며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고 연락 바란다고 했다는데

이를 받아 든 아내가 노발대발 상대에게 강하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한창 공부할 나이의 아이에게 무슨 짓이냐며~~

 

그런데 이제는 우리의 뜻대로 막무가내로 막을 수 만은 없는 나이가 됐고

대학시절 이런 계통의 활동으로 졸업 후 엄청난 시련과 따라잡기 세월을 보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반갑지 않은 일이기에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단 유학으로 방향을 잡고 나니 그 흔한 해외 어학연수 한번 다녀오지 않은 딸이

유학을 준비하는 주위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TOEFL 점수를 넘겼고

 

유학을 준비하는 학원에서의 공부도 일취월장했나보다.

 

나중에 전해 들은 학원측의 평가 이야기지만

10년에 한명 만날 정도로 특출난 아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영국의 교수가 내한하여 유학 준비생들의 작품을 보며 인터뷰를 가졌고

영국 최고의 디자인 스쿨에는 딱 두명에게만 입학 허가서를 주었는데 그 중에 선택이 되었고

 

12월 말 쯤에 미국의 각 학교로 보낸 어플리케이션에서

이례적으로 불과 보름도 안돼서 답변을 보내온 학교도 있었다.

 

장학금을 줄려고 그러나보다 라는 학원측의 추측도 설마하고 흘려 보냈는데

2월에 정식으로 보내온 레터에 대부분의 학교에서 전학년 장학금 지급을 약속해 왔다.

 

맨 처음 이례적으로 빠른 답장을 보내온 학교가 바로 SVA인데

처음부터 가고 싶다고 지목했던 학교이고 장학금까지 준다니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학금이라고 해봐야 자국민 학생들에게 주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 처럼 생색내기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뿌듯했다.

 

학점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유학을 보내준 부모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힘들어도 밤 새워 가며 과제하고 공부한다는 소식이 1학년 학기 초부터 들려왔다.

 

그렇게 학교를 마쳤고 같이 뉴욕에 남아있는 친구와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 않았느냐는 위로의 말도 서로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업을 하고서 또 한차례의 마음 고생을 겪었나보다.

 

취업 비자를 내준다는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국내로 돌아왔을 때의 문제가 걱정이 되었나보다.

 

국내파들이 대거 진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인정을 받고 자리를 잡을 수 있느냐가 걱정거리였지

꼭 미국에 남아야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상태에서 귀국하면 국내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고~

 

그에 대해 내가 해 준 말이 있다.

귀국해서 놀아도 좋으니 걱정 말라고~

 

그런 내 말에 상당히 고무되어 모든 걱정과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에 알게 된 일이지만 비자가 거부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나름대로 상당한 노력도 한 모양이었다.

 

다시 비자 신청을 할 때 수상경력 등이 있으면 유리하다고 해서

밀라노에서 주최한 국제 공모전에 출시를 해서 은상을 받았다고 한다.

 

대상이 없는 대회이니 2등으로 수상한 셈이란다.

 

회사에서 업무로 만든 작품이 유투브에서 1주일만에 6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말도

마음이 편해진 다음에 전해 준 소식들이다.

 

문득 중.고등학생 시절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다른 부모들은 난리들인데 우리는 그냥 당연하다는 듯 시큰둥하게 반응한다는 거다.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내심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느꼈는데~

 

그런 우리의 반응을 이제는 딸애가 닮아가고 있는 것인지

대수럽지 않은 일인 양 소식을 전해온다~~ㅎ

 

 

자 발급차 귀국 전에 NYT 간부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하고 왔단다.

 

어떻게 자기를 알고서 인터뷰를 하게 됐냐고 물으니

교수 추천으로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교수님은 연세 많은 여교수로 무척 유명한 분이지만

워낙 엄격한 분이라서 자기를 아껴주는 줄도 몰랐다고 하니까

 

그렇게 엄격하고 유명한 교수님의 추천이기에 인터뷰를 갖는 거라며

뉴욕에서도 인맥은 매우 중요하니 좋은 관계 유지하며 지내자고 했단다.

 

졸업을 앞두고 작품집을 심사할 때 담당 교수를 비롯하여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여러 명의 교수와 학과장까지 평가에 참여하는데

 

평점 5.0 만점에 4.8을 받았으니 학교에서도 나름 실력을 인정 받았나보다.

 

 

 

 

 

내 생일에 보내온 엽서~

 

공교롭게도 딸애 생일 바로 다음 날이 내 생일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의 생일 잔치는 못 해 주고

이렇듯 소식만 전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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