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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Africa 여행/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작은 언덕에 하늘 높이 솟아있는 로마시대의 유적 폼페이의 기둥 Pompey's Pillar~

 

폐허가 다된 언덕 위에 높게 세워져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 폼페이의 기둥 Pompey's Pillar이다.

 

 

원래 이곳에는 2세기 말에 세운 400개의 기둥을 가진 신 세라피스 Seapis의 신전 사라피움 Sarapeum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 말에 그리스도교도들이 파괴해 버려 지금은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30m, 둘레 2.7m의 기둥 하나만이

 

푸른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다.

 

 

기둥 옆에는 작은 스핑크스가 있고~

 

 

 

 

 

 

 

폐허 위에 남아 있는 신전 유적의 잔해들이다.

 

 

 

 

 

 

 

 

 

 

 

폼페이우스 (Pompeius: B.C.106~48)가 카이사르에게 쫓겨 알렉산드리아로 도망 왔는데, 이때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그의 목을 베어서 기둥 꼭대기에 매달았다고 해서 '폼페이의 기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본 폼페이의 기둥과 스핑크스 모습이다.

 

 

 

 

 

 

 

기원 전 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뒤를 이어 클레오파트라 7세와 이복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이집트를

 

공동 통치하다가 동생과의 세력다툼 끝에 여왕은 시리아로 추방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 (Caesar: B.C.100~44)와 세력다툼을 하다가 패한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48년

 

알렉산드리아로 도망 왔는데,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카이사르에게 잘 보이려고 도망 온 폼페이우스를 살해해 버렸다고

 

한다.

 

 

이집트를 정복한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카이사르는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멀리하고 클레오파트

 

라 7세와 손을 잡았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도움으로 클레오파트라 7세는 왕위를 되찾아 이집트를 다스렸고, 연인관계가 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프톨레마이오스 15세인 카이사리온 Caesarion인데,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였다고 한다.

 

 

 

 

 

 

 

폐허가 다된 신전 부지의 우측에 폼페이의 기둥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계단 길을 조성해 놓았다.

 

 

 

 

 

 

 

기원전 44년, 클레오파트라 7세와 함께 로마 이집트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가졌던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암살을 당했다고 한다.

 

 

이에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의 뒤를 이어 이집트에 온 안토니우스 (Antonius: B.C.82~30)와 관계를 맺고 이집트를 계속

 

다스렸는데,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 (Octavianus: B.C.63~A.D.14)가 이끄는 로마 군에 안토니우스가

 

이끄는 이집트 군이 참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자 안토니우스의 자살에 이어 클레오파트라 7세도 코브라로 하여금 자기의 유방을 물게 하여 자살했는데, 이때

 

여왕의 나이 39세였고, 약 3천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고대 이집트 왕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지고 이후 약

 

700년 동안 로마의 지배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로마의 두 장군을 매혹시킨 클레오파트라 7세는 로마인들로부터 두 장군의 명성을 더럽히고 로마를 위태롭게 한 '나일의

 

마녀'라는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인이 아닌데도 이집트 왕조를 살리려고 노력했던 여왕이었고, 여왕이 죽고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명성을 떨치고 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지금까지 클레오파트라를 주제로 한 영화는 30편이 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클레오파트라'이고, 그밖에 세익스피어의 희곡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유명하다고 한다.

 

 

 

 

 

 

 

폼페이의 기둥으로 이어지는 통로 모습이다.

 

 

 

 

 

 

 

거대한 폼페이의 기둥 밑에서 남긴 기념사진이다.

 

 

기둥 옆의 스핑크스 모습이고~

 

 

 

 

 

 

 

 

 

 

 

기둥 옆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두 개의 스핑크스와 폼페이의 기둥 모습이다.

 

 

이곳에는 모두 세 기의 스핑크스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머리가 없다고 한다.

 

 

 

 

 

 

 

폼페이의 기둥이 있는 언덕에서 바라본 주변 모습이다.

 

 

 

 

 

 

 

스핑크스와의 키스~?

 

 

스핑크스의 얼굴을 장식하고 있는 파라오의 모습이 무척 잘 생겼다.

 

 

 

 

 

 

 

다시 심혈을 기울여 담아본 폼페이의 기둥 모습이다.

 

 

 

 

 

 

 

기둥이 있는 언덕을 내려오면서 담아본 주변 모습들이다.

 

 

 

 

 

 

 

폐허로 변해버린 신전 터 모습이다.

 

 

 

 

 

 

 

이 폐허의 모습처럼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이며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한 무대였는데도 그들의 무덤이나 궁전은

 

말할 것도 없고 유적이나 유물도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현재 이집트에는 중부 이집트의 덴데라의 하트호르 신전의 바깥벽에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아들 카이사리온의 돋새김이

 

있고, 룩소르와 아스완 사이에 있는 콤 옴보 신전에 클레오파트라로 추정되는 돋새김이 남아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은 이스탄불의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고~

 

 

 

 

 

 

 

 

 

 

 

폐허로 남아 있는 신전 부지의 사방으로 이어지는 탐방로의 각 방면에서 담아본 언덕 위 폼페이의 기둥과 주변 모습들이

 

다.

 

 

 

 

 

 

 

전면에 보이는 작은 건물에 이 유적지의 출입구가 있다.

 

 

탐방로 주변에 놓인 건물 잔해들이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스핑크스들 모습이다.

 

 

 

 

 

 

 

유적지를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담아본 폼페이의 기둥 모습이다.

 

 

유적지 입구에서 만난 장난기 넘치는 이집트 소년 모습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