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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어 - 정일근

 

가을 전어 - 정일근


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전어나 듬뿍 썰어달라 하자
 
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 하자
바다는 떼지어 헤엄치는 전어들로 하여 푸른 은빛으로 빛나고
그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을을 어찌하지 못해 속살 불그스레 익어
제 몸속 가득 서 말의 깨를 담고 찾아올 것이니
조선 콩 된장에 푹 찍어 가을 바다를 즐기자
 
제철을 아는 것들만이 아름다운 맛이 되고 약이 되느니
가을 햇살에 뭍에서는 대추가 달게 익어 약이 되고
바다에서는 전어가 고소하게 익어 맛이 된다
 
사람의 몸속에서도 가을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법이니
그 빈자리에 가을 전어의 탄력 있는 속살을 채우자
맑은 소주 몇 잔으로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으니
밤이 깊어지면 연탄 피워 석쇠 발갛게 달구어 전어를 굽자
 
생소금 뿌리며 구수한 가을 바다를 통째로 굽자
한반도 남쪽 바다에 앉아 우리나라 가을 전어 굽는 내음을
아시아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즐겁게 피워 올리자


이 시를 읽으면
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낸 전어회가 떠올라 입에 침이 고인다.
 
조선 콩 된장에 푹 찍어
맑은 소주 몇 잔
기울이면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으니
 
이 시는 그냥 읽고, 전어나 먹을 일이다.

정일근 시인 
 
경남 진해 출생으로, 1984년 실천문학(5권) 신인작품모집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처용의 도시』, 『경주 남산』,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오른손잡이의 슬픔』을 펴냈습니다. 시와 시학  젊은시인상(2001), 소월시문학상(2004)을 수상했고. 고래보호운동의 공로로 2005년 연말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습니다.  
 
위의 시 「가을 전어」는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32쪽에 실려 있습니다.


전어 철이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정일근 시인의 시 「가을, 전어」이다.
감상 같은 것 필요 없지.
아암, 그렇구,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