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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들/여행정보

남프랑스의 키워드 4

 

dove special, south of france
프로방스가 질투한 이웃, south of france

 

랑그독-루시용과 미디-피레네

 

 

오랜만에 <DOVE>가 프랑스의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고흐가 화폭에 담았던 프로방스의 녹아내릴 듯한 햇살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이번에는 그 서쪽의 이웃 랑그독-루시용과 미디-피레네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왼쪽) 카르카손 이중 성벽의 외벽과 내벽 사이는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됐다.
(오른쪽) 샘 기옘 르 데제르 마을 어귀에 있는 호텔 ‘르 기욤 도랑주’

연중 300일 햇살이 비치고, 세계 최대의 포도밭이 있으며, 지중해변의 아름다운 해안은 물론 피레네 산맥 너머의 스페인 문화마저 공유하는 이곳은 프로방스 못지않게 매력적인 곳입니다. 첫술이지만 조금이라도 많이 보고 싶은 욕심에 시간을 조각조각 나누어 몽펠리에, 님, 툴루즈, 루르드 등 아름다운 도시들과 그 사이에 기적처럼 남아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래서 배가 부르냐고요? 아니요, 중독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남프랑스를 이해하기 위한Keyword 4


남프랑스라! 애매한 용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남쪽을 다녀왔다고 먼저 말하는 이유는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이번엔 어디냐?”는 질문에 “랑그독-루시용과 미디-피레네에 다녀왔다”고 말하면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아프리카나 남미의 어느 지방 이름처럼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래서 우선 지도를 먼저 확인하라는 당부를 드린다.

 

프랑스 지도에서 시선을 남쪽으로 내리면 스페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 개의 지역(레지옹)이 보인다. 동쪽부터 차례로 랑그독-루시용 Languedoc-Roussillon, 미디-피레네 Midi-Pyrenees, 아키텐 Aquitaine이다. 12월에 <도베>가 다녀온, 그래서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랑그독-루시용과 미디-피레네를 무대로 하고 있다.


1 랑그독 와인의 새로운 정체성 ‘Sud de France’
랑그독-루시용에 로마인에 의해 프랑스에서 최초로 포도원이 만들어진 역사는 2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도 프랑스에서 포도밭의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이다. 이는 생산량이 많았다는 것이고, 당연히 저급 와인부터 고급 와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와인이 생산됐다. AOC나 VDQS 와인보다 저급하다고 인식되는 프랑스 뱅 드 페이 Vin de Pays급 와인의 70퍼센트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쉽게 말하면 모내기 철 막걸리에 비유할 만한 노동자의 ‘막’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인식이 ‘박혀’버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이 지역 와인은 환골탈태하고 있다. 새로운 와인을 찾는 대자본이 투입되는 것은 물론 지역 와인 생산자들의 노력이 열정적이다. 덕분에 와인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며, 그동안 덩달아 숨 죽여야 했던 고급 와인들이 재발견되고 있다. 랑그독-루시용 지방청장 조르주 프레슈는 와인 판매의 활성화를 위해 랑그독-루시용 지역에서 판매되는 모든 와인에 ‘남프랑스 Sud de France’라는 레이블을 부착하기로 했다.

2 순례자들은 남프랑스에서 신발 끈을 묶는다
파울로 코엘료의 첫 번째 소설 제목이 바로 <순례자>다. 그리고 파울로는 몸소 남프랑스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남프랑스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을 방문하면서 빠짐없이 듣게 되는 말이 바로 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의 길)’다.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의 여정이 피레네 산맥 너머 남프랑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몽펠리에나 툴루즈 같은 도시에서도 순례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이정표를 발견하게 된다. 올 초에는 가수 박기영이 33일간의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기도 했다. 800킬로미터의 보도 순례에서 돌아와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코엘료는 매번 남프랑스로 돌아온다. 크리스마스에는 꼭 루르드를 방문해서 기도를 하는 그는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꼽히는 생 사뱅에 별장을 마련했다.


3 남프랑스 모세의 기적, 미디 운하 Canal Du Midi
미디 운하는 남프랑스 사람들의 치수 능력과 그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위대한 업적이다. 로마 시대부터 수로를 만들어 풍족한 물의 혜택을 누렸던 남프랑스 사람들은 1661년부터 가론 강 중류의 툴루즈 Toulouse에서 지중해 연안의 세트 S?te까지 물길을 뚫어서 루이 16세 치하 프랑스의 국력을 과시했다. 20년 동안 1만2000명이 동원되어 240킬로미터의 운하에 382개의 다리를 건설했다. 프랑스의 모세라고도 불리는 피에르-파울 리케 Pierre-Paul Riquet가 사재까지 쏟아 부어가며 이룩해낸 미디 운하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가론 운하와 함께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미디 운하는 선박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돌아가던 길을 단축하여 프랑스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후에 철도가 놓이면서 물자와 여객 운송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대신 남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레저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주변 경관의 조화를 위해 심어놓은 4만5000그루의 나무가 300년 동안 자라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보트 한 척을 빌려 3박 4일 동안 미디 운하 크루즈를 즐기는 것이 남프랑스의 보편적인 휴가다.

4 정치 지도를 바꾼 종교 전쟁의 전적지 카타르 Cathar
남프랑스는 사라센 전쟁, 십자가 전쟁, 구교와 신교 간의 전쟁 등 종교라는 이름 아래 감행된 전쟁의 광풍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12세기에 유입된 반로마 교회인 카타르 Cathar는 ‘순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남프랑스 알비 Albi(그래서 알비주아파라고 한다)를 중심으로 세를 확장해나갔다. 불가리아에서 유입된 카타르는 십자군 전쟁 이후 일어난 청빈 운동의 대명사 격이다. 가톨릭의 전통과 부패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그들은 교회의 표적이 되었다. 1209년 교황 이노센트 3세가 일으킨 알비 십자군에 의해 20년 동안 카타르 교도들은 잔인한 박해와 죽음을 당했고, 역사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 전쟁은 정치적으로 남프랑스가 프랑크 왕국의 치하에 놓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카타르의 영역이었던 카르카손도 알비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한 뒤 십자군의 주둔지가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카타르는 카르카손을 포함한 남프랑스 일대에 남아 있는 카타르 고성들을 중심으로 여행의 새로운 테마가 되고 있다. 관련 서적을 구입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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