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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4

  

[south of france] beautiful cities' story
남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4

 

 

도시에 가면 어디서든 물 이야기를 한다.

물의 신을 숭배했던 로마의 도시 님 Nemes과

성모님의 기적수가 아직도 철철 넘치는 루르드 Lourdes,

미디 운하가 시작되는 가론 강이 흐르는 툴루즈 Toulouse,

지중해변을 지척에 둔 젊은 도시 몽펠리에Montpellier까지,

남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말하는 물은 언제나 투명하지만 도시의 색깔은 홀릴 만큼 찬란했다.

 




1 1364년 수도원으로 건축되어 1536년부터 성당으로 바뀐 세인트 피에르 성당
3 오페라 극장 코미디 앞에 있는 계란 모양의 코미디 광장 중앙에는 세 명의 여신이 서 있다.



300일간의 태양이 키워낸 몽펠리에 Montpellier
가을이 깊었지만 몽펠리에의 태양은 여전히 따사로웠다. 연중 300일 가까이 해가 난다는 도시답게 화창한 하늘이었다. 몽펠리에 법원 옆에 있는 개선문 위에 올라가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도시의 모든 편의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한 곳. 완전한 전원생활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영민한 사람들이 꿈꾸는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랑그독-루시용 지역의 주도인 몽펠리에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인구 25만 명(인근 지역까지 합하면 43만 명)으로 프랑스에서 여덟 번째로 큰 도시다. 몽펠리에는 원래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정치 괴물이라고까지 불리는 현재 랑그독-루시용 지방청장인 조르주 프레슈가 몽펠리에의 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도시는 대대적인 변화를 견뎌냈다. 자고 나면 새로 생겨나는 주거 단지는 쾌적한 삶의 질을 보장하는 환경이 되어주었고, 불과 30년 만에 8만 명의 인구가 25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트램 노선을 신설하면서 2000년도부터는 시내 중심가에 차량 통행을 제한했으며, 버려져 있던 낡은 주택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 도시를 방문해서 불과 하루 이틀이라는, 긴 역사에 비교하면 순간에 불과한 시간 동안 머물다 가는 이방인에게는 그런 변화가 보일 리 없다. 그래서 몽펠리에 사람들이 안내한 곳이 파브르 박물관일 것이다. 4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올해 2월에 재개관한 파브르 박물관은 몽펠리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3,4 4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재 개장한 파르브 뮤지엄은 3500점의 그림과 900점의 판화를 보유하고 있다.



파브르 박물관의 역사는 화가인 프랑수아 자비에 파브르가 자신의 개인 소장품을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파브르 뮤지엄의 간판스타 격인 쿠르베의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1854년 작)는 특별전 준비 관계로 아쉽게도 볼 수 없었지만, 거대한 붓으로 그야말로 일필휘지의 추상화를 그려내는 피에르 솔라주의 작품을 여러 점 만날 수 있었다. 그의 거침없는 붓놀림처럼 몽펠리에가 발전해나가는 양상도 거침이 없는 중이다. 파브르 박물관은 쿠르베, 들라크루아, 현대미술 화가인 피에르 솔라주로 이어지는 미술사의 연대기적 전개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박물관 자체의 건축을 살펴보면서도 그런 연대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개·보수 공사 후 3배 이상 늘어난 뮤지엄은 희미하게 남아 있는 프레스코 등 낡은 건물의 아름다운 부분을 살려내면서도 자연 채광이 최대한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옛 건축에 대한 이런 접근은 비단 공공건물만이 아니다. 구시가지의 작은 뒷골목에 늘어선 부티크 숍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천장 아치를 볼 수 있다. 미술, 음악, 영화 등 아티스트들이 불러일으키는 문화적인 활기는 몽펠리에의 부흥을 일으키는 마법의 가루 같은 것이다. 특히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들에 비유되는 몽펠리에의 현악기 장인들의 솜씨는 한국에까지 알려져 있다.


1 분수 광장에 있는 디안느 Diane 사원의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님에서 가장 로맨틱한 기념물이다.
2 님의 문장인 야자수와 악어 문양은 도시 어디서나 쉽게 발견된다. 필립 스탁은 이를 응용해 버스 정류소를 만들기도 했다.
3 님은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투우 경기가 개최되는 도시다. 검투장이었던 아레나는 이제 투우 경기장으로 사용된다.
4, 5 1세기말에 세워져 2000년 동안 우뚝 서 있는 메종 까레의 청소 작업이 한창이다. 맞은 편에는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갤러리 겸 도서관이 옛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600만 명을 모으신 달콤한 기적, 루르드 Lourdes
루르드에 다녀와서 얼마 되지 않아 TV를 보니 에서 나주 성모 동산을 고발하고 있었다. 나주는 가톨릭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1858년 18회나 일어났던 루르드의 성모 발현은 가톨릭교회의 인증 아래 지금까지 1억 명 가까운 순례자를 받아들인 곳이다. 그 차이가 눈에 보였다. 기적에 대한 논란은 루르드에서도 여전하다. 어린 소녀 베르나데트가 성모를 만난 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1만 명이 루르드의 성수를 마시고 치유됐다지만, 그중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기적은 66건에 불과하다. 하나의 기적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15년간의 조사가 이뤄진다. 어차피 믿는 사람은 믿고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믿는다고 해서 꼭 낫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다고 해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루르드는 어느 누구도 나서서 현혹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적수’라고도 불리는 루르드의 물은 우상화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파이프에 꼭지를 달아놓은 엉성한 수돗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침 사람이 없어서 그냥 다가가 약수를 담듯 물을 담고 목을 축였다. 굳이 낑낑대며 담아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원하면 수송비만 지불하고 주문할 수 있다. 루르드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에 속했던 어린 소녀 앞에 모습을 나타낸 성모 발현의 취지에 어울리는 일이다.


11858년 시골 소녀 베르나데뜨가 성모의 모습을 18번이나 만난 후 루르드는 기적의 성지가 됐다. 처음에 세워진 지하 성당은 120명을 수용할 수 있었지만 몰려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신축이 불가피했고 지금은 한번에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St-Pie X 성당까지 들어섰다. 사진은 5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염 시태 성당.
2 성지 안에서는 비고레의 백작들이 살았던 요새 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목격한 루르드의 기적은 매년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이 6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수년 전만 해도 한 해 동안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총 합계와 비슷한 숫자다. 이 작은 마을에 일어나고 있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교도만 루르드를 찾는 것은 아니다. 문, 바위, 빛이라는 세 가지는 어느 종교에나 공통적인 상징물이다. 요즘에는 인도인들의 방문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성지를 벗어난 루르드 시가지의 첫인상은 외람되게도 가톨릭 테마파크의 쇼핑 스트리트처럼 느껴졌다. 성지 주변의 건물은 온통 성수 통과 성수를 판매하는 상점들이고, 그 배후는 다 호텔이다. 그래서 루르드는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호텔 수가 많은 곳이다. 250여 개의 호텔이 성지 주변에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진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윗마을의 인구는 1만5000여 명, 성지를 포함해 주변에 상점과 호텔들이 모여 있는 아랫마을에 연간 방문하는 인원은 600만 명이다. 그중 10만 명 정도가 한국의 성지순례 단체들이라 루르드에서 한국인은 말하자면 큰 고객이고, 그래서 여섯 분의 한국 수녀님들이 상주하고 계신다. 나는 지난달 <도베>의 마인드 트래블에서 ‘기적을 믿는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루르드에서 요행 같은 기적을 바라지는 않았다. 때가 오지 않았음을 안다.


3 성지 주변에는 성모상을 포함한 가톨릭 성물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4 성모가 처음 발현했던 마자비엘 동굴은 루르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다. 이 동굴 안에서 기적수가 샘솟는다.


파리의 야경보다 아름답다는 루르드의 촛불 행렬은 물론 세 곳의 성당에서 매일 거행되는 미사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나는 이른 새벽 성모님이 나타났던 그 자리, 마사비엘 동굴 Grotte de Massabielle 앞에서 성호경을 긋는 것으로 ‘신자’로서의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뒤돌아 나오는 길에 먼발치에서 바닥에 입을 맞추는 사제를 보았다. 루르드의 성모는 여덟 번째의 발현에서 “회개하시오. 죄인을 위해 기도하시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시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제는 나 같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땅에 입을 맞추었고,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성수로 목을 축였다. 루르드에는 성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루르드 인근에 8개의 스키장과 8개의 온천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루르드를 다녀온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자 이 지역 최고의 요리사가 살고 있는 생 사뱅도 가깝고, 지척에 있는 피크 디 미디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천문 관측소가 있는 곳으로 피레네 산맥이 펼쳐진 경관이 알프스 못지않다. 페이지를 넘기면 그 자세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1 의사당인 캐피톨의 후면 파사드. 전면의 캐피톨 광장과 후면의 시민 공원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자코뱅 수도원의 기둥은 마치 20미터 높이의 야자수가 뻗어있는 것 같다.



핑크, 파스텔, 바이올렛의 도시, 툴루즈 Toulouse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채석광의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툴루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붉은 벽돌로 집을 짓고 살았다. 전형적인 로마 도시의 풍경과 다른 모습이 싫었던 시민들은 한동안 돌로 집을 짓는 꿈을 꾸었다. 벽돌을 마치 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도록 배치한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붉은 벽돌이었지만 이제 툴루즈는 핑크 시티 혹은 장미 마을 Ville Rose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선명한 색깔로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됐다. 선명한 보라색의 바이올렛이 툴루즈의 꽃으로 정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툴루즈는 지금까지 방문한 크고 작은 도시들과는 시각적인 차별화를 이룬다. 누런 라임스톤과 잿빛 화강암 일색이던 도시의 색깔은 툴루즈에 이르러 화사한 분홍빛 장미처럼 꽃을 피웠다. 거리는 분홍빛 활기로 넘쳤다. 하지만 오래전 툴루즈에 부 富를 가져다준 색은 분홍이 아니라 파스텔의 쪽빛이었다. 우리말로 대청 大靑이라고 하는 파스텔은 원래 인디고의 원료를 얻기 위해 사용되던 식물이다.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파스텔은 툴루즈와 카르카손 일대에서 왕성하게 재배되었다. 저렴한 합성 인디고가 유입되기 전 15세기에 파스텔 염료를 출하하는 일은 상인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었다. 블루는 귀족과 부유층만 입을 수 있는 특별한 색으로 여겨졌다. 성모마리아 상이 항상 푸른 망토를 두르고 있는 이유도 설명된다. 인디고에 밀린 파스텔은 님 Nimes의 데님처럼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파스텔 교역으로 부자가 된 상인들은 님의 저택 못지않게 아름다운 호텔 드 베르누이 Hotel de Bernuy, 호텔 드 아세작 Hotel d’Assezat 같은 집들을 툴루즈 시내에 남겨두었다. 관광객에게 내부를 공개하는 상인들의 저택을 가보려 했지만 우리의 발길을 묶어놓은 것은 카피톨 The Capitole 광장에서 마주친 결혼 행렬이었다.

 
3 생 세느낭 교회는 현존하는 로마 시대 건물 중 가장 큰 건축물이다. 순교자 세느낭 주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4 붉은 벽돌로 지어진 뚤루즈는 핑크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의 행렬이 광장 주변에 이어지더니 어느새 광장 한복판에 예복을 입은 부부가 하객과 관광객들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128미터의 파사드를 자랑하는 의사당인 카피톨은 건축 당시부터 지금까지 툴루즈의 권력자들이 일하는 곳이자 이벤트 장소이기도 하다. 분주함을 피해 카피톨 안으로 들어가 있자니 어느새 신혼부부의 행렬이 계단을 가득 메우며 또다시 진로 방해를 했다. 지금이야 카피톨과 카피톨 광장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축제지만 예전에는 이곳에서 이교도들의 처형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황소 거리 Rue de Taur에서 일어난 비극도 종교 박해와 관련된 것이었다. 세르낭 주교가 이교도에 의해 황소에 발이 묶인 채 끌려 다니다가 죽음을 맞이한 이 거리에 그의 유해를 모신 생 세르낭 교회 Saint Sernin Basilica가 세워졌다.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로마 시대 건축물로 그 화려함과 명성이 자자하다. ‘생 자크 드 콤포스텔라’를 걸어가는 성지순례자들이 꼭 방문하는 곳이 생 세르낭 교회와 자코뱅 The Jacobins 수도원이다. 13~14세기에 세워진 수도원 건물은 20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거대한 기둥이 받치고 있다. 야자수 가지가 뻗어나간 것 같은 천장 아치의 곡선이 고개를 떨굴 수 없게 만든다. 툴루즈는 십자군 전쟁, 신구교도 간의 전쟁 등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남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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