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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들/다른나라

유네스코 지정 10대 문화재

 
유네스코 지정 10대 문화유산

  
◇ 고대 그리스의 자부심, 아크로폴리스


고대 그리스 문화의 대표적인 걸작’이라 불리는 아크로폴리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제1호인 만큼 그 역사적 의미가 깊다.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와 ‘높은’의 뜻을 지닌 ‘아크로’가 합성된 아크로폴리스에는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을 짓고 여러 신들의 상징물을 만들어

당시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기원전 431년경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의 일부가 파괴되었고,

 현재는 3개의 신전인 파르테논, 에레크테이온, 니케 신전과 화려한 열주문만이 남아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네 여신상을 보관하던 곳이자 트로이 전쟁 장면이 묘사되어 있던 곳이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6명의 처녀상이 무거운 돌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의 처녀단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으며,

열주문 옆의 보루 위에 세워진 아테나 니케의 작은 신전은 승리의 여신 니케를 기념한 신전이다.

 성벽 밑으로는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연극장과

부유한 귀족이자 철학자였던 헤롯 아티커스가 서기 161년에 세운 극장이 있다.

 


◇ 700년간 풀리지 않은 불가사의, 피사의 사탑과 두오모 광장


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두오모 광장의 상징물은 뭐니 뭐니 해도 ‘피사의 사탑’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피사의 사탑은 본래 피사 대성당의 부속 건물이었다.

즉 피사 대성당은 성당 본건물과 세례당, 그리고 피사의 사탑으로 불리는 종탑 등 3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피사의 사탑은 원래 지금보다 2배나 큰 110m 높이로 계획되었으나

공사 중 지반의 한쪽이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계획을 수정, 지금의 모습으로 ‘기울어진 채’ 완공되었다.

무려 7백년 동안이나 기울어진 채 쓰러지지 않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불리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즉 물체의 질량 중심이 그 물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 내부에 있으면 쓰러지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피사의 사탑은 수세기 동안 조금씩 기울어져 왔음에도 여전히 존재해 있다.

 일부에서는 향후 200년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전히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져 있는

현재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직되기를 바라고 있다.

 

 
◇ 러시아 혁명의 중심지, 붉은 광장과 크렘린 궁


모스크바에서의 첫날 저녁은 붉은 광장에 있어야 한다.”

크리스타 볼프는 ‘모스크바 노벨레’ 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많은 이들을 제일 먼저 유인하는 곳이 바로 전설적인 붉은 광장이다.

붉은 광장은 15세기 모스크바에 화재가 발생하자 크렘린 궁전 앞에 보호구역으로 설치되었으며,

지금의 이름을 얻기 전까지 ‘화재 광장’ 혹은 ‘교역광장’으로 불렸다.

‘러시아 권력’의 상징이자 대통령 관저가 있는 크렘린 궁과 맞닿아 있으며,

 상트 바실리 대성당, 레닌 영묘, 유리 천장의 긴 통로가 있는 굼 백화점과

러시아 호텔 등이 에워싸고 있어

가히 러시아의 정치, 문화, 관광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이 세상 모든 도시 가운데 가장 무계획적으로 그때 그때의 편의에 따라 지어진 이 도시에서 서로 맞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바로 이 끝없는 부조화가 이 도시를 전대미문의 멋진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독일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1928년 모스크바를 떠나며 남긴 이 문장만큼

 ‘모스크바’를 제대로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부모님을 향한 효심의 발로, 경주 불국사


국사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

 ‘불국사고금창기’에는 528년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창건하였다 하고,

 ‘불국사 사적’ 에서는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에 의해 지어졌다고도 한다.

그러나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은 ‘삼국유사’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불국사는 751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짓고,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당시의 건물은 대웅전, 다보탑·석가탑, 청운교·백운교, 극락전, 무설전, 비로전 등

약 80여 종의 건물이 무려 2천여 칸이나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593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인해 불에 타버리고,

전쟁이 끝난 1604년경부터 최근까지 복구와 중건이 계속되었다

. 현재 불국사 경내에는 다보탑(국보 20호), 석가탑(국보 21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 사리탑(보물 61호) 등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으며,

뛰어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동서양의 아름다운 동거, 에스파한의 이맘모스크


에스파한은 현재의 수도인 테헤란 남쪽에 위치해 있었던 이란의 옛 수도를 말한다.

 이 도시는 헬레니즘 문화와 페르시아 건축술이 빚어낸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전제주의 권력의 실상이 여실히 남아 있는 아픈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맘모스크, 즉 이맘사원 역시 이란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사파비드 왕조의 절대 권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사파비드 왕조 시대의 강력한 통치자였던 아바스 1세가 왕실의 면모를 갖춘 사원을 짓기를 명령했고,

그래서 탄생한 모스크가 바로 이맘사원이다.

 
1611년에 착공에 들어간 후, 세라믹을 조합하는 예전의 모자이크 방식 대신에

 ‘카쉬스(Kashis) 타일’, 즉 7가지 색상을 칠한 타일에 유약을 발라 처리하는 간편한 기법을 새롭게 적용해

 건물의 완공을 앞당겼다고 한다.

1630년과 1660년에 약간의 장식이 추가되었는데,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18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완공된 세계적으로 드문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이란 특유의 아름다운 종유석으로 입구의 천장이 장식되었으며,

 금과 은의 층으로 덮인 모스크의 문들은 화려함 그 자체이다.

 


◇ 아시아 경제 발전의 상징,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파리 하면 에펠탑을 연상하고, 뉴욕 하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떠올리듯이,

1997년 이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말레이시아의 새로운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

1994년 공사를 시작해 1999년 8월 개관한 88층의 쌍둥이 빌딩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아직도 진정한 마천루가 어디인가를 놓고 논란은 남아 있다.

 페트로나스 타워가 실제 건물 높이에서는 미국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보다 낮기 때문이다.

다만 시어스 타워 꼭대기에 있는 안테나는 건물 높이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페트로나스 타워의 첨탑 부분은 건물 높이에 포함되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면적 65,728평에 지하 6층, 지상 88층, 전체 높이 452m 규모로, 공사비용만 총 2억 3천만 달러가 들었다.

 
88층부터 4개의 층이 하나의 층을 이루는 중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4개의 층까지 합하면 총 92층이 되는 셈.

 말레이시아의 경제 개발을 위해 한국과 싱가포르의 발전상을 벤치 마킹한 것으로 알려진

마하티르 수상의 제의로 건축되었으며,

우리 나라의 삼성물산과 일본의 하사마건설이 한 동씩 나누어 건설했다고 한다.

 

 
◇ 접시 위의 오렌지에서 탄생한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는 호주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아닌,

 오세아니아 대륙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지정된 중요한 세계문화유산이다.

1957년 뉴사우스웨일즈 주정부의 주도하에 건설된 이 건축물은

 전 세계로부터 국제건축현상공모에 제출된 233개의 설계안 가운데,

 덴마크의 건축가 존 엇존이 당선되었고,

그해 건축이 시작되어 14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건축가는 자신의 부인이 정성껏 깎아 놓은 접시 위의 오렌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이한 건물 형태 때문에 4년으로 계획했던 공사기간이 10년이나 연장되었으며

공사비 역시 20배 가량이나 더 투자되었다고 한다.

결국 오페라 하우스의 애초 기본 골격은 유지되었으나

세 번의 재설계를 거쳐 상당히 축소된 디테일로 1973년 완공되었다.

 특이한 것은 하늘과 땅,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전체적인 모습이 보이도록 디자인되었다는 것.

 높이 67m, 길이 185m, 폭 120m에 달하는 건물 내에는 총 5개의 공연장과

스튜디오, 갤러리, 레스토랑, 도서관 등 1천여 개의 부대시설이 있으며,

연간 22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 아메리카 대륙의 작은 프랑스, 퀘벡 역사 지구


캐나다의 프랑스 문화권 내에서도

가장 문화가 풍부하고 역사가 깊은 도시가 바로 퀘벡 주(州)이다.

 퀘벡 주 몬트리올 북동쪽에 위치한 퀘벡 역사 지구는

누벨 프랑스의 옛 수도로 요새화된 식민 도시로,

 유네스코가 세계 보존지구로 지정할 만큼 거리 자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가 ‘퀘벡 역사 지구’에 해당하며,

 성벽 바깥쪽으로 펼쳐진 화려한 신시가지까지 2개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은 프랑스의 탐험가인 자크 가르티에로서,

1535년 이곳의 스태더코나에서 퓨런 인디언 마을을 발견했으며,

1608년 사뮈엘 드 샹플랭이 이 지역에 세운 캐나다 최초의 영구기지는

 모피 교역 기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상튀에르 노트르 담 뒤사크라 쾨르 메종 스웰, 우르술라 수녀원, 앵글리컨 대성당,

 플레이스 로열 노트르담 드 퀘벡 대성당,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녀원이었던 오텔 디유 드 퀘벡 수녀원 등

프랑스의 문화유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 U.S.A.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이념을 영원한 처녀 조각상으로 형상화한 자유의 여신상은

잘 알려진 대로 미국 독립 1백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기증한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우호증진을 위한 선물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들에게 자유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받침대를 포함해 전체 높이가 무려 92m에 달하는 이 조각상의 받침대에는

 기금 마련을 위해 에머 레저러스가 지은 ‘새로운 거상(巨像)’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프랑스에서 제작되어 지금의 위치에 세우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기술과 작업이 필요했는지는

그 과정에서 언급된 수많은 기술자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1875년 조각가 프레데리크 O. 바르톨디에 의해 시작된 이 작업은

엠마누엘 B. 뒤크와 알렉상드르 에펠이 고안한 4개의 대형 철제 구조 위에 세워졌으며,

 귀스타브 에펠에 의해 분해되어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에 의해 받침대가 디자인되었다.

 이 받침대에서 정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을 올라가야 하며,

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보통 3~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 Morocco 알라딘 램프 속의 도시, 페스 메디나


‘‘도시’란 뜻의 메디나는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도시적인 삶의 중심지를 의미한다.

모로코의 메디나 가운데 현재 약 1백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페스 메디나는

 뛰어난 건축적 면모와 함께, 모로코에서 가장 경이로운 메디나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되고 규모가 큰 중세 도시를 대표한다.

특히 중세의 고혹적이고 독특한 도시 구조를 거의 변형 없이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12년 페스 조약으로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자,

 전통적인 메디나의 외곽에 프랑스 스타일의 대로를 만들어

 ‘빌누벨(Ville Nouvelle)’이란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이러한 도시 계획 전략은 결과적으로 구(舊) 메디나가 보존될 수 있게 했고,

동시에 행정적인 중심지로부터 면하게 만들었다.

페스 메디나는 오늘날 이러한 역사적 유산으로 인해 두 가지 양면성을 간직하고 있다.

 즉,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손상되지 않은 중세 도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산업과 첨단 기술의 발달이 도시의 외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