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를 떠나 향한 곳은 터키 여행의 백미라는 카파도키아다. 8월 하순이었으나, 아나톨리아 고원의 한낮 뙤약볕은 만만치 않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동남쪽으로 두 시간쯤 달렸다. 갑자기 길 오른편에 햇빛 반짝이는 새하얀 ‘벌판’이 펼쳐졌다. 이름난 소금호수(투즈게)다.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이 호수는 넓이가 1500㎢나 된다. 바다였다가 물이 빠지면서 생긴 호수다. 겨울엔 물이 2m쯤 차있다가, 여름이면 증발해 소금밭으로 남는다. 수면을 걸어보니 발 밑에서 흰 모래소금이 흐슬부슬 바싹거린다. 10cm쯤 파니 바닥은 약간 호졸근하다. 호숫가에 세운 소금 정제공장이 해마다 30만 톤씩 소금을 걸러낸다니 무진장한 자원이다.
소금호수 끝자락에 있는 셀주크 시대 고도 악사라이(‘흰 궁전’이란 뜻)를 지나 동북쪽의 네브세히르(‘새 도시’란 뜻)에 도착했다. 1954년 주도로 승격한 이곳은 카파도키아 여행의 거점으로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로 붐빈다.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어로 ‘아름다운 말이 있는 곳’이란 뜻의 ‘카트박투키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은 면적 250㎢를 아우른 하나의 지역 명칭으로서 악사라이와 네브세히르 두 개 도시와 여러 주변 마을이 딸려있다.
흔히 신비로운 기암괴석의 대명사로만 알려진 카파도키아는 그에 못지않게 기구한 인간 삶의 티가 새겨진 고장이기도 하다.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슬기가 조화의 극치를 이룬 지구상 몇 안 되는 명소다. 지상 지하 기암괴석 속에 삶의 터전인 도시와 마을, 교회가 복합구조를 이룬다. 이런 조화상을 떠난다면 바위와 돌이 아무리 기기괴괴한들 그곳을 찾는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버섯·도토리·갓모양 바위 속
거미줄 같은 요새 160여곳
집 외에 학교·교회당까지
6천~7천년 전부터 생겨난 흔적
초기 기독교 은신처·전란 피난처로
내부 곳곳 지름 170㎝ 돌문 설치
카파도키아의 지형은 약 300만년 전 해발 4000m의 에르지예스 화산이 폭발해 인근 수백 ㎞에 마그마를 토해내면서 이뤄졌다. 마그마가 굳어진 용암은 경도가 낮아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닳아져 천태만상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옹긋쫑긋 튀어난 바위만 봐도 버섯, 도토리, 갓, 짐승 모양 등으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며 밋밋한 능선은 마냥 물결, 주름무늬로 수놓은 것 같다. 방향과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하며 색조 또한 이채롭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이 조물주의 조화(造化)이며 자연의 신비다.
이런 자연의 조화와 신비는 피조물인 인간에게 도전일 수 밖에 없다. 카파도키아 특유의 문화는 이곳 사람들이 그 도전에 성과적으로 응전했기에 창출된 것이다. 그래서 일행의 답사는 자연의 신비보다 그들의 체취가 밴 곳곳을 둘러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찾은 곳은 데린쿠유(‘깊은 웅덩이’이란 뜻)란 지하도시다. 네브세히르에서 29㎞ 떨어진 이곳은 해발 135의 질펀한 고지에 있다. 어린 목동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다가 우연히 입구를 발견한 이 지하도시는 1965년 공개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높이 150cm, 너비 60cm에 불과한 통로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뚫려있다. 몸집이 웬만히 큰 사람은 머리를 숙인 채 모로 걸음을 더듬어야 한다.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길목도 수두룩하다. 도시 전체가 미로라서 길을 잃기 일쑤다. 대부분 용암을 파서 만든 인조굴로 인구 2만을 수용했다고 한다. 지금껏 지하 8층(5)까지 발견했으나 모두 17~18층은 족히 되리라고 보고있다. 일행은 4층까지 가까스로 내려갔다. 입구는 몇군데가 더 있으나 막혀버렸다.
층마다 거주공간은 물론, 부엌과 방앗간, 창고가 따로 있다. 몇 곳에는 회랑과 학교, 교회당과 수도관 딸린 세례소, 포도주 저장고 같은 부대시설 흔적도 보였다. 깊이 70~8에 달하는 수직 통풍구 52개가 있는데, 환기뿐 아니라 내부 온도를 조절하는 구실도 했다. 안내원이 천장 구멍에 라이터를 켜니 불꽃이 한쪽으로 빨려들어갔다. 통풍구가 아직 작동한다는 증거다. 내부 곳곳엔 두께 55~65cm,
지름170~175cm의 둥근 돌문을 설치해 외부 침입을 막았다.
이 지하도시는 북쪽으로 9km 떨어진 한 지하도시와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데린쿠유 부근의 30곳을 포함해 찾은 지하도시는 150개나 되는데, 가장 큰 외즈코나크 지하도시는 6만명까지 수용하는 대규모였다고 한다. 세계 8대(혹은 9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지하도시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유물로 미뤄 6~7천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바위를 뚫고 살기 시작한 이래 고대 히타이트인들이 처음 정주한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박해를 피한 은신처로 쓰이다 기독교가 합법화되자 수도나 포교 장소로 바뀐다. 이슬람·몽골·티무르군이 침입했을 때는 피난처나 방어보루로 쓰였다.
바위교회에 기독교 벽화 즐비
데린쿠유 지하도시 구경을 마치고 비둘기 계곡에 들렀다. 옛날 기독교인들이 배설물을 포도밭 거름과 교회 그림의 물감으로 쓰기 위해 비둘기를 많이 키운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이어 예치히사르산 기슭을 지나 리틀 케니에 이르렀다. 발밑에는 기암괴석과 숲이 어울린 멋진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수만년 전 바다였다는 괴레메 마을도 멀리서 시야에 들어왔다. 창공에는 관람객을 태운 오색찬연한 열기구가 두둥실 떠올라 날아간다. 다음 발길을 옮긴 젤베 계곡에서는 큰 뱀과 아기 뱀이 기어가는 형상을 한 괴석을 보고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어느덧 정오를 훨씬 넘겼다. 오후엔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슬기를 조화시킨 또 하나의 현장인 바위교회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표적인 곳이 ‘당신은 볼 수 없다’는 뜻의 지명인 괴레메 마을의 노천박물관이다. 지붕 없는 공간에서 2~10세기 전개된 기독교 활동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공개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괴레메 마을 주변 400개를 포함해 카파도키아엔 모두 1500개에 달하는 바위교회가 있다고 한다. 교회 구조물과 안에 그려진 갖가지 프레스코화들은 로마~비잔틴 시대 교인, 수도승들의 정신세계와 생활상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 성립과 발전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역사의 한 토막을 장식했던 기독 세계를 펼치려고 성직자들은 벽화에 성심(聖心)을 부었다. 그러나 그때도 마음만 능사는 아니었나 보다. 돈이 생기면 전문 화가들을 초청하고, 없으면 서툰 솜씨로 직접 그렸다. 그래서 어떤 벽화는 미숙하고 소묘에 그친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얼거리만 있는 소묘 같은 그림은 학생 교육용이라고 해설원은 설명한다.
카파도키아의 지상 지하에는 숱한 신비와 불가사의가 비장되어 있다. 인간의 힘으로 감춤을 다 들춰내기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드러난 것에만 만족하고 맴돈다면, 그 감춤은 영원한 감춤으로 남을 것이다. 인간에 의한 좀더 성숙된 조화만이 역사의 현장 카파도키아의 감춤을 들춰내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것은 문명사의 통칙이다.
주거·상업 근거지→기독교 성소→무슬림 안식처로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에 벌집처럼 동굴을 뚫어 삶터를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흔히 초기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은신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나 이 불가사의한 동굴건축이 태동한 실제 배경은 전란의 영향 탓으로 보는 편이 온당하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한가운데인 카파도키아는 서방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근교 아으즈 카라한의 상업도시 유적과 이 부근에 집중된 케르만 사라이 등의 대상 숙박소터들은 이 지역의 교통로적 위상을 보여준다.
동굴 공간의 성격은 지역사의 부침을 따라 바뀌었다. 기원전에는 주거·상업 근거지였다가 비잔틴 제국 강역이 된 4~7세기 기독교 수도사들과 교인들이 모여들면서 암굴들은 손꼽는 신앙과 포교의 거점이 된다. 동방 기독교의 신비주의 전통에 충실했던 이들은 깊은 신심으로 각종 성화와 제단 등을 만들었으나, 8~9세기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성상파괴령으로 상당수가 파괴되는 수난을 당한다.
로마 지하묘지(카타콤)처럼 기독교인들의 집단 주거지화가 진척된 것은 이슬람 세력들의 압박이 본격화한 8세기 이후부터다. 탄압을 피해 지하 묘지에 숨어든 로마시대 특유의 주거 방식이 수백년 뒤 동방에서 7만 이상이 살았다는 거대 지하 도시로 재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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