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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들/다른나라

인도의 카주라호(Khajuraho)

성을 통해 태어나고 성을 통해 자신을 복제해 가는 우리의 삶과 예술에는 곳곳에 성의식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 중에서 인도의 카주라호(Khajuraho)에 있는 사원만큼 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곳도 없을 것이다. 이곳의 힌두교 사원들 중 특히 락슈마나(Lakshmana) 사원과 칸다리야 마하데브(Kandariya Mahadev) 사원은 남녀의 성행위를 표현한 미투나(Mithuna·남녀교합상) 조각들로 뒤덮여 있다.

성적 합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남자는 요가를 하듯 물구나무를 서고 여인은 다른 여인의 부축을 받는 등 수많은 체위의 형상, 심지어는 말과 성행위를 하는 남자 등을 묘사한 조각들을 보면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찬델라(Chandella) 왕조 때 만들어진 조각들이다.
신화에 따르면 달의 신인 찬드라(Chandra)와 헤마바티(Hemavati)라는 젊은 과부 사이에서 태어난 찬드라 트레야(Chandra Trreya·달의 아들)는 인도 대륙의 중부를 다스렸고 그 왕조는 약 500년 동안을 이어갔다. 그리고 전성기인 950∼1050년 사이에 85개의 힌두교 사원을 건설했는데 현재 남은 것은 22개뿐이다.
그렇다면 왜 신성한 사원에 이런 음란스러워 보이는 미투나 조각들을 만들었을까?
공식적인 설명이 없어서 추측이 난무하는데, 찬델라 왕조의 부흥기와 비슷한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성행한 탄트리즘(tantrism)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탄트리즘의 근본적인 개념인 탄트라(tantra)는 정신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의 탄트리(tantri)에서 왔고, 이 단어의 어원은 ‘넓힌다’는 뜻을 가진 탄(tan)이라고 한다. 즉 탄트라는 ‘스스로 지식을 넓히고 몸의 실천적인 수행을 통해 익히는 것’을 말한다.

탄트리즘은 드라비다계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코가 낮고 살결이 검은 드라비다족은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지에 살면서 이미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인더스문명을 일으켰는데, 기원전 1500년경 중앙아시아에 살던 살결이 희고 코가 큰 인도아리안계에 의해 멸망했다. 그들의 유적지에서는 요가를 하는 사람과 여신의 조각들이 발견됐다.
이들은 파괴의 신인 시바신과 성적인 에너지 혹은 우주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샤크티를 숭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탄트리즘의 가르침에서 절대자로서의 시바신은 순수한 존재, 시간을 초월한 로고스로서 남성으로 표현되고, 샤크티는 창조의 에너지로 시간 속에서 변하며 자기 실현을 하는 에로스로서 여성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힌두교에서는 늘 남신에 대응하는 여신이 있고 항상 짝을 지어 나타난다. 즉 이성과 감성, 원리와 에너지가 합일되어야 우주 만물이 운행되는 것을 의미하며,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이(理)와 기(氣)에 상응한다.
여기서 유래한 탄트리즘 의식에는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신전에서 여신을 숭배하면서 곡물과 가축 등을 바치고 심지어는 사람까지 희생물로 바쳤다. 둘째는 ‘차크라 푸자’다. 한밤중에 같은 수의 남녀가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고기와 생선, 곡물을 먹은 후 성교 의례를 거행했다. 여기서는 그토록 엄격했던 카스트(계급제도)도, 근친관계도 무시되었다. 셋째는 만트라(진언)를 외면서 손으로 형태를 달리하여 갖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무드라(手印)를 만들어 여신의 생명을 자신의 몸안으로 불러들여 샤크티를 깨우는 의식이었다. 넷째는 주술에 관한 의식이다. 이 중에서 첫째와 둘째 의식을 좌도적(左道的)이라 하고, 셋째와 넷째 의식을 우도적(右道的)이라 한다. 그리고 이 탄트리즘은 불교로 스며들면서 밀교(密敎)로 불리게 된다.
카주라호에 새겨진 수많은 미투나는 좌도 탄트리즘 중에서 둘째에 해당하는 수행방법이다. 샤크티, 즉 성적인 에너지를 이용하여 남녀가 결합하고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그 절정의 상태에서 자아의식과 우주의식이 하나되고, 절대와 상대가 하나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행위를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백성들에게 성행위를 장려하느라 그랬다는 얘기도 있고, 성교육을 위해서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분명한 것은 탄트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좌도 탄트리즘은 13세기까지 유행하다가 차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마하트마 간디가 ‘다 때려부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정통 힌두교도들은 이를 싫어한다. 그러나 카주라호의 미투나상은 독특한 인도문화의 하나로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끌고 있다.

 

■여행 에피소드
가끔 미투나 조각상이 있는 힌두사원에서 젊은 사내들이 혼자 다니는 여자들을 상대로 ‘탄트리즘’을 설교하는 것을 목격했다. 물론 그들은 탄트리즘 사두(수행자)가 아니라 그것을 빙자해서 섹스를 즐겨 볼까 하는 사람들이다. 이 좌도 탄트리즘 수행은 면도날 위를 걷거나 성난 호랑이와 노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며, 꼭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걸 혼자서 수행한다는 것은 탄트리즘 수행을 빙자하여 ‘쾌락의 탐닉’으로 가는 지름길이니 조심할 일이다.
카주라호에는 단체 관광객은 물론 배낭 여행자들도 매우 많이 오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인심은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바가지와 호객이 심해서 불미스러운 일들도 생기고, 처음 만난 사람의 집에 따라가 차를 마시고 정신을 잃은 채 길바닥에 내버려진 사례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여행 정보
카주라호는 교통이 불편하다. 아그라에서 잔시까지 기차로 오거나 바라나시에서 사트나까지 기차로 와서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이 있다.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까지 직행으로 가던 밤 버스는 운행이 중단되었다. 1박에 5000∼6000원 하는 저렴한 배낭족 숙소부터 1만∼2만원대의 중급 호텔 그리고 최고급 호텔까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음식점이 있는데 아씨식당, 총각식당, 태극식당, 전라도밥집 등 인도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도 꽤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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