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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Africa 여행/이집트

오시리스 신화의 무대 에드푸의 호루스 대신전 Great Temple of Horus~

 

크루즈선을 나서서 마차를 타고 호루스 대신전 Great Temple of Horus으로 가는 길이다.

 

 

 

룩소르에서 남으로 55km, 인간을 창조한 크눔 신전이 있는 에스나를 지나 룩소르와 아스완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에드푸 Edfu는 옛 이름이 베흐데트 Behdet였다고 하는데, 이곳에 신 호루스 대신전 Great Temple of 

 

Horus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신 호루스를 그리스 신화의 아폴로 Appllo 신과 같게 보았고, 그래서 그들은 에드푸를 '아폴로의

 

도시'라는 뜻으로 아폴리노폴리스 Apollinopolis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신의 시대에 선의 상징인 신 호루스와 악의 상징인 세트가 지상의 왕권을 놓고 다툰 오시리스 신화의

 

무대였고~

 

 

 

 

 

 

 

호루스 대신전으로 가는 길에 본 에드푸 시가지 모습이다.

 

 

룩소르에서 아스완에 이르는 나일 강 주변은 나일 계곡의 농경지대가 점점 좁아지고 붉은 사암 언덕이

 

점점 넓어지는데, '그레코 로만 신전지대'라고 불리는 이 일대에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와 로마시대에 세운

 

신전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으로 이어지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지배가 시작된

 

그리스 점령기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빼면,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는 총 31왕조가 지속되었고

 

이 왕조를 통해 모두 154명의 파라오가 약 3천 년 역사를 통치했다고 한다.

 

 

 

 

 

 

 

기원전 332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침공해 페르시아인들로부터 이집트를

 

해방하지만, 이어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운 새로운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그리스 문명의 영향권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Ptolemaeos 치세 말기는 고대 세계사의 유명한 인물들인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클레오파트라 등이 등장하는 시기인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는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7세로 옥타비아누스를 선봉으로 이집트를 침공한 로마군에 악티움 해전에서 패함으로써

 

300년 간을 이어져 내려오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로마 점령기가 시작된다.

 

 

 

 

 

 

 

이제 마차는 서서히 호루스 대신전 Great Temple of Horus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대신전 입구의 기념품상과 관광객들 모습이다.

 

 

 

 

 

 

 

멀리 모습을 드러낸 호루스 대신전 Great Temple of Horus이다.

 

 

 

그레코 로만시대의 신전의 특징은 전체를 설계한 다음에 신전을 지었기 때문에 신전이 짜임새가 있고

 

균형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에 그 이전 왕조시대의 신전들은 선대 파라오가 신전의 중심 부분을 지으면, 그 뒤를 이어 파라오들이

 

증축을 했기 때문에 카르나크 대신전처럼 크고 규모가 복잡하다고 한다.

 

 

 

 

 

 

 

호루스 대신전 앞에는 폐허가 다된 건물이 남아 있는데, 이 건물은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세운

 

탄생의 집이라고 한다.

 

 

 

 

 

 

 

폐허로 남아 있는 탄생의 집 모습이다.

 

 

 

 

 

 

 

탄생의 집과 호루스 대신전 사이에서 담은 모습이다.

 

 

 

 

 

 

 

이제 호루스 대신전 Great Temple of Horus 안으로 들어가 보자~

 

 

 

 

 

 

 

호루스 대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3세 때 착공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때 완공하기까지 18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신전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1860년, 모래에 묻혀있었던 신전을 프랑스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뜨가 발견하여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하고~

 

 

 

 

 

 

 

이 신전은 전통적인 신전 배치 양식으로 지었으며 탑문 - 안마당 - 기둥 홀 - 성소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룩소르의 카르나크 대신전에 못지않게 높이 36m, 폭 137m의 거대한 탑문이 있다.

 

 

탑문 양쪽을 장식하고 있는 여신 이시스와 그의 아들 호루스 모습이다.

 

 

 

 

 

 

 

탑문 옆에 서있는 이중 관을 쓴 매 모습의 호루스 상이다.

 

 

탑문 위쪽에 새겨진 부조다.

 

 

 

 

 

 

 

탑문에 새겨진 파라오와 호루스 신 그리고 여신 하트호르 모습이다.

 

 

 

 

 

 

 

안마당으로 들어서서 본 탑문이다.

 

 

탑문의 바깥벽과 안쪽 벽에 새겨진 돋새김들은 천지창조, 신전의 건립 과정, 호루스가 세트와 싸우는 모습,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적들과 싸우는 모습, 호루스와 하트호르의 결혼을 기념하는 모습 등을 거대한

 

돋새김으로 새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탑문을 들어서서 만나게 되는 안마당은 32개의 둥근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둥에 새겨진 여신 하트호르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보통 암소의 뿔 사이에 태양 원반이 있는 왕관을 쓴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여신 하트호르는

 

'호루스의 집'을 뜻한다고 하며, 그리스 신화의 사랑,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나 로마

 

신화의 비너스에 해당하는 여신으로 '이집트의 비너스'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여신 하트호르는 왕비의 수호신이었고 그의 남편 신 호루스는 파라오의 수호신이었는데, 하트호르는

 

사랑과 기쁨의 여신일 뿐만 아니라 임신과 출산의 여신이기도 했다고 한다.

 

 

 

 

 

 

 

기둥에 새겨진 매의 머리를 가진 호루스와 따오기 모습을 한 지혜의 신 토트 모습이다.

 

 

 

고대 이집트 신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는 오시리스의 재생, 부활 신화라고 한다.

 

 

'신의 시대'의 최초의 신왕은 태양신 라였고, 신들과 인간들이 지상에서 함께 살았던 이 시대의 이집트는

 

지상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신 라는 인간을 말살하려 했던 대소동이 있은 뒤, 왕위를 대기의 신

 

슈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돌아갔고 슈에 이어 왕위는 땅의 신 게브를 거쳐 신 오시리스가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는 게브와 누트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남매 중 장남이었고, 오시리스는 누이동생 이시스와 동생 세트는

 

막내 여동생 네프리스와 결혼을 하여 남매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오시리스는 흰 옷을 입은 죽은 자의 몸에 머리는 상 이집트의 흰 왕관과 마아트의 깃털로 장식한 왕관을

 

합쳐서 이중 왕관 아테프 Atef를 쓰고 손에는 통치권을 상징하는 갈고리와 도리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오시리스는 이집트를 훌륭하게 다스렸고 고대 이집트인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았는데, 왕위를 탐낸 동생

 

세트는 음모를 꾸며 오시리스를 살해하고 유해를 나일 강에 버렸고, 슬픔에 잠긴 그의 아내 이시스는 유해를

 

찾아 헤매다가 시리아에서 찾아 이집트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안 세트는 오시리스의 시신을 다시 빼앗아 열네 토막을 내어 전국 곳곳에 버렸고, 이시스는 다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그의 유해 조각을 모았는데 이때 물고기가 삼켜버린 성기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시스는 신 아누비스 Anubis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의 유해를 미라로 만들고 토트 신의 도움을 받아 주술로

 

미라가 된 오시리스를 부활시켰고, 이때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져 나일 강의 습지에서 아들 호루스를

 

낳았다고 한다.

 

 

성장한 호루스는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와 싸워 이겨 지상의 왕이 되었고, 이시스가 성기 없는 오시리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부활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세트는 신들의 회의에 호루스는 왕이 될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으나 신들은 직접 성행위가 없어도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려서 호루스는

 

지상의 왕이 되고 오시리스는 명계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한다.

 

 

 

 

 

 

 

호루스 대신전의 안마당 모습이다.

 

 

 

 

 

 

 

안마당 주변의 기둥과 벽에는 많은 돋새김이 새겨져 있다.

 

 

안마당에서 성소로 이르는 기둥 홀 입구 모습이다.

 

 

 

 

 

 

 

기둥 홀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집트의 상하 이중왕관을 쓰고 있는 호루스 신 모습이다.

 

 

 

호루스 Horus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신인데,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이다.

 

 

매는 전쟁의 신과 승리를 거둔 지도자를 상징하게 되었고, 매의 탁월한 능력에 대한 생각이

 

왕은 매가 사람으로 변신을 해 지상에 나타난 것으로까지 확대 해석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은 이후 교리로 확고하게 정착되었으며, 왕들은 호루스라는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동시에 통치하는 왕들은 태양신 레의 숭배자가 되었기 때문에 호루스는 태양과 동일한

 

존재로 생각되었다고 한다.

 

 

태양이면서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이라는 이 이중적인 성격으로 인해 호루스는 다양한 신화를

 

구성하게 되어 숭배 중심지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고 형상도 다르며, 하로에리스,

 

호루스 베데타, 하라크테, 하르마키스, 하르시에시스 등의 이름들이 모두 호루스를 지칭하는 말들

 

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