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석남사
석남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20년(680) 고승 석선(奭善)이 세웠고 고려 초기 혜거국사가 크게 중수하여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량도량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나중에 화덕(華德)이
다시 지은 절이라고 한다.
경내에는 보물 제823호인 16나한을 모신 영산전을 비롯해 대웅전 마애여래불 등의 도지정문화재와 석탑
부도 등의 향토 유적이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대웅전 모습
계단에서 바라다 본 영산전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불상과 그 생애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모신 곳으로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의 끝이 짧고 약간 밑으로 처진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는 조선 초기 건물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튼튼하게 균형 잡힌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 초기에서 중기 사이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영산전 내부
영산전은 석사모니불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함께 모신 불전의 명칭인데 이곳에는 16나한을 함께
봉안한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
절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이 없어서 분명하진 않지만 영조 1년(1725)에 해원선사가 대웅전과 영산전의
기와를 갈았다고 전해지므로 17세기경에 대웅전이 지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1978년에 영산전 앞에서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집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건물의 모서리를 장식한 공포로 보아 원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었으나,
후에 맞배지붕으로 고쳐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내부에는 중앙에 불단이 설치되어 있고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 보기 드문 2층의 닫집이 있다.
대웅전 내부
삼존불과 빨간색으로 단청을 한 닫집이 이채롭다.
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영산전 모습
석남사 석탑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된 석탑은 대웅전 앞 영산전 우측에 2기의 동서 석탑이 나란히 서 있는데 이 사진은
영산전 앞에서 담아 본 것이다. 양식과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안성의 서운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청룡사 동쪽 자락에는 석남사가 있는데 이 두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청룡사로 향하던 중 석남사로 향하는 팻말이 보여 먼저 석남사를 들렀는데 같이 간 짝이 산아래
입구에서 부터 무척 맘에 들어한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산길을 따라 사찰에 이르는 길이 매우 호젓
하고 길가의 아주 조그만 개울이 아기자기해서란다.
석남사 앞에 이르니 서운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과 사찰을 찾은 많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석남사
경내에 들어서니 산사답게 매우 조용하고 한적하다.
몇되지 않는 사찰 건물과 탑이 올망졸망하게 배치되어 있는 이 사찰에 칠장사보다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단다.
석남사 금광루
석남사 입구의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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