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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Europe 여행/덴마크

슬픈 사랑을 간직한 인어공주를 만나러 ~

인어공주와 그 주변의 수많은 관광객들 모습~

 

 

인어공주 동상 쪽에서 나오는 관광 차량들~

 

코펜하겐을 인어의 도시라고도 한단다.

 

이 도시가 자랑하는 안데르센이 동화 인어공주를 쓰기 전부터 그랬다는데

코펜하겐 옆 해협은 중세부터 인어의 골짜기라고 불렸고

오스트리아 궁정가수인 다니엘 마이스너가 만든 1623년의 지도에는 코펜하겐이 세이렌의 거주지라 적혀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빠뜨려 죽이곤 했던 세이렌~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쓰게 된 데에는 이런 전설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본다고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와 함께 코펜하겐을 더욱 인어의 도시로 각인시키는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가는 길이다~

 

 

 

 

 

버스에서 내려 인어공주 동상으로 가는 해변에는

서유럽 국가들을 돌아보면서 종종 만나게 되는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름다운 요트들이 그것인데

항상 선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부러운 모습이 이곳에도 있다.

 

부러운 마음에 가까이 한컷 더 담아보고~~

 

 

 

 

 

인어공주 동상에 가까워지자 주차되어 있는 버스들도 보이고 줄지어 가는 여행객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 길을 가면서 현지 가이드가 한 말들인데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단다. 날씨가 맑아서~

일주일을 기준으로 3~4일 동안은 흐린 날씨로 대부분의 일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우울증도 많고~

그런 이유인지 음주율이 90%이고 흡연율은 80%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피우던 담배 꽁초는 길가에 그대로 버리라고 한다.

그래야 청소부들의 일거리도 생긴다고 하며

보다 중요한 이유는 하수구 등에 버릴 경우 하수처리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냥 길거리에 버리는 것이 도와주는거란다~

 

얼마전에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본 광경이 주마등 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외부에 설치해 놓은 재털이 주변에서 몇몇 중년분들이 담소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다가가는 꼬마를 본 한 엄마가 자기 아이를 큰소리로 부르며 데려가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재털이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던 이들을 나무라듯 흘겨보며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담배를 피던 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하는 표정들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와 자유를 구가하는 선진국이라는 덴마크에서 들은

의외로 많은 우울증과 음주 흡연율~

그리고 보기 힘든 우리 거리의 휴지통 등이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행복의 기준은 뭐고 자유의 기준은 뭔지~~ㅎ

 

 

해변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가판대의 작고 앙증맞은 인어공주 기념품들이다.

 

그 뒷편의 인어공주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무엇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이 작은 인어공주 동상 앞으로 끌어 모으는걸까~

 

나로서는 인어공주 주변에 모인 사람들 구경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동상 주변의 방파제 모습~

 

 

 

 

브뤼셀의 오줌싸게 소년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와 함께

유럽의 3대 썰렁명소의 하나로 언급되는 수모를 무릅쓰고

랑엘리니 Langelinie의 바위 위에 꿋꿋하게 앉아 있는 80cm의 작은 인어 동상~

 

전설로 부터 시작하여 안데르센의 동화에 등장하고

동화 속의 그 인어공주가 발레의 주인공이 되고

이를 본 한 사업가에 의해 동상으로 만들어져 코펜하겐의 둘도 없는 명소로 탄생된 일련의 과정들이

경이롭고 감탄스럽기만 하다.

 

한 위대한 작가가 코펜하겐이라는 도시와 덴마크라는 나라의 이미지까지 바꿔 놓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어찌보면 작고 볼품없는? 이 작은 동상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 많은 이들이 찾게 만들어 놓은

이 나라의 저력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곳까지 온 이상 공주님의 몸매라도 구경하고 싶어졌다~~ㅎ

그래서 가까히 다가가봤는데~

 

 

 

인어공주

 

1913년 칼스버그의 창립자 칼 야콥센 Carl Jacobsen은 인어공주의 발레공연을 보고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에게 인어공주의 동상을 주문했다고 한다.

 

공연의 프리마돈나였던 엘렌 브리스를 모델로 하고 싶어했으나

반라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엘렌의 반대로 실패하고

그 대신 조각가의 아내 엘리네가 동상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온몸을 드러내 놓은 탓인지 얼굴은 자세히 보여주질않네~~

갑자기 젊은 시절 가끔식 맛보았던 시원한 칼스버그 맥주 생각이 간절해진다~~ㅎ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리집 세여자가 이곳에 모여 있네~

 

별관심이 없나보다.

그래도 기념사진 한장 정도는 남겨야지~

 

 

 

동상 건너편의 부두 모습~

 

 

 

 

주변에 작은 기념품상들도 있었는데

관심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딸들 모습을 도촬하고~~ㅋ

 

 

 

 

 

작은 커피점도 구경해 보는데

 

노부부도 이곳이 맘에 들었나보다~~

 

 

 

열정적으로 인어공주를 담고 있는 관광객들~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덴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구두수선공이고 어머니는 세탁부였으며 집안 형편은 늘 어려웠다고 한다.

그가 11세 때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가족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졌고

비천한 배경과 불확실한 성적 정체성 그리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으며

그로 인해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는 못생긴 데다 눈치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평도 있다는데 ~

 

안데르센은 어려서부터 줄곧 자기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의 앞에 나가

시선을 끌어 모음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고 출세한 바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내면에는 불안감과 자괴감

그의 외면에는 출세욕과 허영심이라는 모순적인 감정이 공존했던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그의 순진무구함은 남다른 동화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반면

가끔은 마치 어린애 같은 자기과시욕으로 나타나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사가 바로 내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 될 것이다라는 안데르센의 말대로

그의 동화는 굴곡 많은 본인의 인생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안데르센은 그의 대표적 출세작 처럼 미운 오리 새끼였다는 평도 있고~

 

무엇에 그리 애착이 남았는지 멀리서 다시 바라보는 노익장 모습도 보인다~~

 

 

방파제 아래 도로로 인어공주를 보러오는 차량과 관광객들이 연실 들어온다.

 

 

 

 

 

이번 여행으로 안데르센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부분들을 상당 부분 알게 되었다.

 

비록 동화 작가로서 불멸의 명성을 얻긴 했지만

사실 동화는 안데르센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했다고 하며

그는 시와 소설, 기행문과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고

특히 극작가로 성공하기를 원했지만 평생 뜻을 이루진 못했다고 한다.

 

나아가 안데르센은 아동문학가로만 낙인찍히는 것을 싫어했으며

말년에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의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내 등에 태우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안데르센이 말했다는데

 

나도 이제 어른이니

이 참에 그의 동화들이나 다시 읽어볼까나~~ㅎ

 

 

인어공주와 작별을 고하고 다음 행선지로 걸음을 옮긴다~

 

해안가로 이어지는 도로는 마치 산책로와 같이 잘 조성된 길들로 이어져 있는데

코펜하겐의 유명 관광지 내에서는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 준다.

 

 

 

멀리서 바라본 인어공주 동상 주변 모습~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작은 선착장이 눈에 밟힌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