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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Africa 여행/이집트

이집트 룩소르의 룩소르 박물관 Luxor Museum~

 

룩소르 박물관 Luxor Museum의 외관이다.

 

 

1975년에 개관했다는 룩소르 박물관은 테베 일대에서 발굴된 초기 왕조시대부터

 

신왕국시대까지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볼만한 전시물로는 입구의 오른쪽에 높이 2.15m의 적색 화강암으로 만든 아멘호테프 3세의

 

머리 상, 왕들의 골짜기의 무덤에서 발굴된 투탕카멘 입상, 카르나크 신전에서 발굴된 양의

 

머리를 가진 하트호르 여신상, 하트셉수트 여왕의 돋새김, 람세스 3세의 작은 오벨리스크 등을

 

꼽고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본다.

 

 

 

 

 

 

 

카르나크 신전의 국가 최고신 아멘 Amen의 입상이다.

 

 

붉은 규암으로 만든 아멘호테프 3세의 두상인데, 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왕관을 쓴 모습이다.

 

 

 

 

 

 

 

 

 

 

 

적색 화강암으로 만들었다는 2.15m에 달하는 아멘호테프 3세의 거대한 두상이다.

 

 

신왕국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는 카르나크 신전의 하이라이트인 둘째 탑문은 지나면

 

나오는 큰 기둥 홀의 중앙에 2열로 6개씩 12개가 서 있는 거대한 기둥을 세운 파라오다.

 

 

또한 카르나크 대신전의 남쪽에 있는 무트 신전도 아멘호테프 3세가 세웠고, 룩소르 신전의

 

중심인 길이 52m의 기둥복도에 높이 19m의 거대한 파피루스 기둥이 2줄로 14개가 나란히

 

서 있는 큰 기둥복도도 아멘호테프 3세가 세운 것인데, 아멘호테프 3세는 영토 확장의 야망을

 

과시하기 위해 이러한 큰 기둥복도와 안마당을 건설했다고 한다.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발굴된 화강암으로 만든 중왕국시대의 세소트리스 3세의 두상인데,

 

머리에는 뱀 장식을 한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이중 왕관을 쓰고 있다.

 

 

 

 

 

 

 

 

 

 

 

카르나크 대신전에서 발굴된 신왕국시대의 방해석으로 만든 스핑크스인데, 스핑크스의 얼굴은

 

파라오 투탕카멘의 모습이라고 한다.

 

 

 

 

 

 

 

 

 

 

 

벽면에 그려져 있는 카르투시 Cartouche 모습이다.

 

 

카르투시는 파라오의 이름을 기록해 둔 타원형 패널로 태양신 라의 우주의 힘과 파라오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파라오의 다섯 이름 중 탄생명과 즉위명에만 사용한다고 한다.

 

 

 

 

 

 

 

선명한 색채의 돋새김 모습이다.

 

 

 

 

 

 

 

카르투시로 표현된 신들의 모습이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발견된 기원전 1224년 신왕국시대 만들었다는 국가 최고신 아멘 Amen과

 

그의 아내 무트 Mut 여신 모습이라고 한다.

 

 

카르나크 대신전은 아멘과 그의 아내 무트 여신과 아들 콘스 신, 이른바 테베의 세 신을 모신

 

신전인데, 이 좌상에서는 무트 여신이 세티 1세의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신왕국시대의 파라오 투트메스 3세 (B.C. 1490~1436)의 좌상이다.

 

 

룩소르 박물관에서 가장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투트메스 3세는 당시 신왕국의

 

예술이 절정에 도달해 있었음을 일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파라오의 얼굴도 출중하게 생겼는데, 실제로 그는 가장 잘 생긴 얼굴과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파라오였다고 한다.

 

 

허리 부분의 혁대에는 신성갑충, 태양신 라 등이 새겨진 카르투시를 볼 수 있다.

 

 

 

 

 

 

 

 

 

 

 

마차를 타고 전투를 하는 모습의 돋새김이다.

 

 

그 옆에는 실제 모형의 마차도 전시되어 있고~

 

 

 

 

 

 

 

 

 

 

 

룩소르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미라 Mummy의 모습이다.

 

 

파라오가 죽으면 그 유해를 성스러운 배에 싣고 나일 강 서안에 있는 하안신전 河岸神殿으로 옮기고

 

유해를 깨끗이 하는 의식을 거행한 다음에 미라를 만들었고, 미라가 된 파라오의 유해는 참배 길을 따라

 

장제전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곳에서 최고 신관이 죽은 파라오가 내세로 가는데 필요한 부활의식을 거행했는데, 부활의식 중 가장

 

중요한 의식은 장제전의 안뜰에서 표범의 모피를 몸에 두른 최고신관이 주문을 외우면서 거행하는

 

입을 여는 의식 Opening of Mouth Ceremony이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가 된 파라오의 입을 열어주면 영혼이 입에 들어가 생명이 다시 살아나

 

죽은 파라오가 내세에서 먹고 말하고 보고 듣고 숨 쉴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 의식을 하는 동안에 죽은 파라오의 후계자는 파라오의 즉위 의식을 동시에 거행했고, 이 의식이

 

끝나면 파라오의 미라는 무덤으로 옮겨져 관 속에 넣고 부장품과 함께 지하에 마련된 널방에 안치

 

되었고, 마지막으로 철퇴의식을 거행한 다음에 무덤은 완전히 봉쇄되었다고 한다.

 

 

 

 

 

 

 

 

 

 

 

미라는 포르투갈어의 '미라 mirra'에서 유래되었고, 영어의 '머미 mummy'는 이집트의 미라를 처음 본

 

페르시아인들이 미라에 칠한 송진이 검게 부식된 것을 보고 페르시아어로 '무미아 moummia'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우선 소금의 일종인 나트론 Natron을 사용하여 유해의 물기를 제거했고, 그 다음에

 

심장만 남겨두고 간, 허파, 위장, 창자 등 내장을 꺼내어 특별히 제작된 네 개의 캐노푸스 단지 canopic

 

jars에 담아서 별도로 보관했다고 한다.

 

 

그리고나서 온 몸에 식물성 방부제를 바르고 아마포 亞麻布로 몸을 감싼 다음에 그 위에 향수와 송진을

 

부었는데, 미라를 만드는데 70일이 걸렸다고 한다.

 

 

특히 머리는 생명의 중심으로 여겼기 때문에 마스크를 씌워 보존했다고 하고~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는 외부 목관 모습이다.

 

 

 

 

 

 

 

미라가 안치되어 있는 내부 관 모습이고~

 

 

 

 

 

 

 

 

 

 

 

세티 1세의 입상이다.

 

 

 

 

 

 

 

 

 

 

 

 

 

 

 

 

 

 

 

룩소르 박물관의 서기 상 모습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석상은 제18왕조의 투트메스 3세 때의 왕실 수석 전령이자 건축가인

 

야무레데의 석상이라고 한다.

 

 

 

 

 

 

 

람세스 3세의 모습이다.

 

 

 

 

 

 

 

나일 강을 오가던 배 모형도 전시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