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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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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카르나크 대신전의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수많은 신전들~ 카르나크 대신전의 셋째 탑문과 넷째 탑문 사이에 있는 오벨리스크 모습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3세기 무렵, 투트메스 1세가 세운 오벨리스크로 높이 21.8m, 무게가 130t에 이른다고 한다. 가까이 담아본 투트메스 1세의 오벨리스크 모습이다. 투트메스 1세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2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는데, 나머지는 로마의 라테라노의 산 조반니 광장에 서 있다고 한다. 넷째 탑문과 다섯째 탑문 사이에는 하트셉수트 여왕이 세운 높이 30m, 무게 323t의 아스완산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2개 중 하나는 그대로 서 있으나 나머지 하나는 성지 가까이 넘어진 채 땅 위에 누워 있는데, 이 오벨리스크에 여왕의 아버지 투트메스 1세를 기념하여 만들..
이집트 천년 왕도 룩소르의 신전 중의 신전이라는 카르나크 대신전~ 이집트 룩소르의 카르나크 대신전 Great Karnak Temple 앞이다. 룩소르 나일 강 동안의 북쪽에 자리한 카르나크, 이곳의 옛 이름은 고대 이집트어로 이페트 수트 Ipet-Sut였는데, '고르고 고른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땅에 신왕국시대의 국가 최고 신 아멘 라를 위해 세운 카르나크 대신전이 있는데, 현재 이집트에 남아 있는 신전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신전이라고 한다. 카르나크 대신전은 약 4천 년 전, 중왕국의 제12왕조 때 처음으로 축조되었고, 그 이후 약 2천년에 걸쳐 투트메스 3세, 하트셉수트, 아멘호테프 3세, 람세스 2세, 넥타네보 2세 등 많은 역대 파라오들이 왕권의 강화와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신전을 개축하고 증축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덴데라에서 천년 왕도 룩소르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서 본 이집트의 농촌 풍경~ 웬 토마토가 가득~? 이곳에서 재배된 걸까? 단순히 운반 중인 걸까~? 덴데라의 대신전을 돌아보고 다시 룩소르로 가는 길에 본 이집트 농촌 풍경이다. 대공사 중인 수로 모습이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대규모의 수로 사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불가결의 일일 것이다.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모습은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데 아직도 파라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면 관광 목적과 정체성의 표현인가~? 종종 보이는 이슬람 사원 모습이다. 이슬람 제국이 이집트를 점령한 것은 7세기 중반으로 그 이후 지금까지 1천3백여 년 동안 이슬람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도시의 주택과 시가지 모습이다.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또다시 열악한..
룩소르 호텔에 도착해서 미리 맛 본 이집트의 유적과 정취~ 잘 차려준 룩소르 호텔의 이집트에서의 첫 저녁 식사다. 식사를 마치고 나선 길에서 보이는 이집트인 고대 의상들이 눈길을 끈다. 기념품샵에도 잠시 들러 보았는데~ 현대인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문양의 액세서리들이 많다. 그리고 잘 정리해 놓은 이 소품들은 누비아 Nubia에 관한 것들인데~ 나일강 상류에 자리한 아스완은 인구 28만 명의 국경도시로 아스완에서 남으로 수단과의 국경까지는 모래언덕이 펼쳐져 있고, 바로 나일 강과 맞닿아 있는 농경지도 마을도 없는 황량한 사막지대인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사막지대를 누비아 Nubia라 불렀다고 하며 누비아는 황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황금이 누비아로부터 아스완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룩소르는 아스완과 함께 누비아에서 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