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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n America 여행/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성당 Catedral Metropolitana~

대성당 Catedral Metropolitana

 

5월 광장 북쪽에 위치한 대성당은 아르헨티나 종교의 중심지로서

약 70년에 걸친 공사 끝에 1827년에 완성된 네오 클래식 양식의 성당이다.

 

정면의 12개 기둥은 12사도를 의미한다고 하며

대성당의 내부에 남미 해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산 마르틴 장군 General Jose de San Martin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5월 광장 주변의 건물들을 보다 자세히 보고 싶어 다시 찾았는데

그 중에서도 대성당을 제일 먼저 보고 싶었다~

 

5월 광장에서 바라 본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로 향하는 도로 모습

 

 

대성당 건너편 건물 모습

 

 

까빌도 Cabildo

 

 

대성당 Catedral Metropolitana

 

12사도를 모티브로 했다는 12개의 기둥 위는 아름다운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고~

 

 

 

좌측 아일 모습

 

 

네이브 모습

 

 

우측 아일 모습

 

 

 

 

 

곳곳의 예배당들 모습~

 

 

 

 

 

 

 

 

산 마르틴 장군 General Jose de San Martin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

 

독립군의 제복을 입고 있는 호위병들이 산 마르틴 장군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방을 지키고 있다~

 

 

 

 

 

 

 

 

 

천장 모습~

 

 

 

 

 

 

 

아르헨티나에 주둔하던 스페인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7세 때 가족과 함께 스페인 본국으로 돌아가 군인이 된 산 마르틴 장군은

34세 때인 1812년 라틴 아메리카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군대를 사직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와서 혁명군에 가담했다고 한다.

 

그 후 1818년에 산 마르틴은 마이푸 전투에서 승리하여 칠레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으며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의 시민들은 산 마르틴을 해방자로서 환영하고 칠레정부의 수반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산 마르틴은 이를 칠레 독립의 지도자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에게 양보하고

자신의 최종 목표인 페루의 해방을 준비했다고 한다.

 

1822년 리마를 함락하여 페루의 독립을 선언하고 페루의 보호자 칭호를 받으며

군사 ·정치의 최고책임자가 되었으나

페루 부왕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산 마르틴의 군대는 페루의 일부 지역만을 장악했다고 한다.


그는 페루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볼리바르의 군사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1822년 라틴 아메리카 북부해방의 지도자 볼리바르와 과야킬에서  만났으나

의견 차이로 그에게 해방운동 지휘를 맡기고 페루를 떠났다고 한다.

 

그 후 1824년부터 딸과 함께 영국과 벨기에 등에서 살다가

자신이 해방시켰던 라틴 아메리카에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72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산 마르틴 장군은 볼리바르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해방의 영웅으로 숭앙되고 있으며

그의 유해는 사후 30년 만인 1880년에 이곳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고 한다.

 
볼리바르는 페루와 알토 페루를 하나로 묶는 대 페루국을 구상했으나

알토 페루의 크리오요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실패하였고

스페인으로부터 해방된 알토 페루는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볼리비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위병 모습

 

 

입구에서~

 

대성당의 이모저모를 돌아본다~

 

 

 

 

 

 

 

 

 

 

 

 

 

 

 

 

 

 

주제단 뒷편의 예배당

 

주제단 뒷쪽의 지하에도 예배당이 있었는데

예배당 앞 통로에는 성체가 모셔져 있다~

 

 

 

 

 

 

 

 

 

 

 

 

 

 

 

 

 

 

 

 

 

주제단 모습

 

 

 

 

 

 

 

 

대성당 앞에서~

 

대성당을 나서서 대통령궁으로 걸음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