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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in America 여행/아르헨티나

5월 광장과 카사 로사다 Casa Rosada~

대통령 궁 카사 로사다 Casa Rosada와 5월의 탑 Piramide de Mayo

 

5월 광장 주변 건물들을 모두 돌아볼 시간은 없어서

선별해서 구경하기로 했다.

 

대성당 다음으로 산토 도밍고 교회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대성당을 나와서 보니 대통령 궁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게 아닌데~

 

가져갔던 조그만 안내책에는 토요일은 휴무라고 되어 있다.

월~금요일 그리고 일요일은 입장 시간까지 기록되어 있고

이 날이 토요일이었던 탓에 대통령 궁을 돌아보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다른 책에서 확인해보니

대통령 궁은 휴일에만 일부 시설에 한해 입장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책들에서 정보를 얻어 계획을 세우는데 가끔은 부정확한 내용들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어찌되었든 입장이 가능할 것 같아 대통령 궁으로 가본다~

 

 

 

까빌도 Cabildo

 

 

 

 

 

광장 중앙의 5월의 탑 Piramide de Mayo

 

5월의 탑 주변에는 각종 시위 현수막들이 있었는데

원색적인 칼라로 그려진 그림도 있다.

 

호기심에 담아보았는데~

국기들의 배치 형태가 눈길을 끈다.

 

 

 

 

 

 

 

 

 

대통령 궁 카사 로사다 Casa Rosada

 

 

 

 

 

 

 

 

카사 로사다 Casa Rosada 입구

 

 

 

 

 

 

 

입구로 들어설 때 호휘병들이 궁에서 나온다.

대성당의 산 마르틴 장군 유해가 있는 방 입구의 호위병 근무 교대를 위해 궁을 나서는 모양이다~

 

 

 

 

 

 

 

 

궁 안에서 호위병과 기념촬영도 하고~

 

 

 

 

 

 

벽면에 걸린 영웅들의 사진 모습

 

 

 

 

 

에비타도 보이고~

 

 

체 게바라의 사진도 걸려 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1928년에 태어나 1967년에 39세로 죽은 체게바라는 살아 있었을 때도 쿠바와 남미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사후 그가 생존 했던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  살아 있을 때 보다 더 많이 유명해진 인물이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중상류층 백인 가정 출신으로

1930년대 아르헨티나는 세계 경제순위 7위를 할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고 남미에서 가장 잘 살았으나

이러한 풍요는 아르헨티나의 백인 상류층들이 구가하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남미 민중들과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고 한다.

 

스물 다섯 살에 의학박사학위를 딴 후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체 게바라는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진보정권을 이루어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던 과테말라로 옮겨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체 게바라는 민주 선거로 이룬 과테말라의 아루벤스 진보정권이

미국 자본의 지원을 받은 아르마스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 사건으로 체 게바라는 비폭력적 개혁은 한낮 꿈일 뿐

남미 민중을 위한 진정한 혁명은 무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군에 합류한 체 게바라는

1958년 자신이 지휘하는 제 2군을 이끌고 쿠바의 산타클라라에서 승리하였으며

많은 쿠바의 민중들이 체 게바라의 군대에 동조하였고 이 승리로 반군은 수도 아바나로 가는 길을 얻었다고 한다.

마침내 1959년 1월 1일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미니카로 망명하면서 반군들은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혁명을 성공하여

피델 카스트로는 총리가 되었고 체 게바라는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쿠바 국민이 되어

피델 카스트로 정부의 각료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쿠바에 작별을 고한 체 게바라는 돌연히 아프리카 콩고로 가 혁명군을 지원했으나

아프리카의 혁명군은 체 게바라가 이때껏 접해 온 남미사람들과는 달랐고

아프리카만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체 게바라는 실패하고 다시 남미로 돌아와서

다시금 볼리비아의 혁명에 가담했다고 한다.

 

결국 1967년 체 게바라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독재정권의 정부군에 체포되었고 

체 게바라의 남미에서의 인기와 그의 활동으로 남미 국가들을 장악하는데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체 게바라의 총살에 동의했으며

1967년 10월 9일 마리오 테란이라는 볼리비아의 하사관의 손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한다.

 

체 게바라는 사후에 오히려 그 영향력이 더 커져갔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체 게바라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프랑스의 68운동에서 그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많은 추종자를 낳았다고 한다.

 

이후 이념은 사라져가도 체 게바라라는 상징으로 굳게 남았으며

그의 사체는 30년 후 볼리비아에서 발굴 되어 쿠바로 옮겨져서

쿠바 혁명의 성공 물꼬를 튼 산타클라라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런 체 게바라의 사진도 대통령궁에 걸려 있었다~ 

 

 

 

 

 

 

 

 

홀의 한쪽에서 궁 내부를 돌아보길 원하는 사람들의 신청을 받고 있었다.

일단 신청자 명단에 올리고나서 보니 기다려야 할 시간이 만만치 않다.

적어도 30분~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만 같았다.

 

일정인원을 가이드 투어로 진행시키고 있었는데

기다리고 돌아보고 하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내부 관람을 염두에 두었었다면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고~ㅠ

 

궁에서 바라 본 광장 모습

 

 

궁으로 돌아오는 호위병들 모습

 

 

 

 

 

우측면에서 바라 본 까사 로사다

 

대통령 궁을 나서 산토 도밍고 교회를 찾아가 본다~

 

1779년에 완성된 산토 도밍고 교회는

1807년 영국의 2차 침공 당시 영국군이 이곳에 주둔하며 크리오요 군과 전투를 벌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며

정면 우측 탑에는 크리오요 군이 영국군에게 퍼부었던 총탄의 흔적들도 남아있다고 하고

교회 내부에는 국기를 고안한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산토 도밍고 교회 Iglesia de Santo Domingo

 

 

 

 

 

 

 

그런데 교회는 보수 중으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대통령 궁 내부나 돌아볼 것을~ ㅠ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측면을 따라가 보는데

엄청난 규모의 교회 측면은 온통 낙서 투성이에 공사 중인 관계로 어지럽기만 하다~

 

 

 

 

 

 

 

 

 

 

 

 

 

 

 

 

 

 

 

 

 

교회 앞 동상들 모습

 

 

 

 

 

5월 광장으로 되돌아 나오고~

 

 

 

 

 

광장을 도는 시티 투어 차량~

 

시간이 많이 흘러서 서둘러 점심을 해결해야만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보고싶은 곳 중의 하나인 보카 지구로 가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점심~

 

요즘 해외여행 중 가끔 선택하는 점심 메뉴다.

대신 저녁은 스테이크 등의 고기로 영양을 보충하고~

호텔에서의 빵 위주의 아침에 이어 점심까지 빵으로 해결하는 것은 힘들고 못 마땅하다.

 

그런데 이날 저녁은 아르헨티나의 대표음식 쇠고기 Asado가 기다리고 있으니

더욱 빵 먹는 것이 싫어진거다~ㅎ

 

 

 

 

 

 

 

 

 

 

 

 

 

 

궁 앞의 광장에서 일행을 만나 보카 지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