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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ica 여행/에티오피아

넓은 평원에 쓸쓸히 버려져 있는 시바 여왕의 궁전 터를 돌아본다~

 

 

티오피아에서는 1974년의 쿠데타로 제정이 붕괴되었는데

 

이 나라의 정사에는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인 메넬리크 1세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솔로몬의 계략에 걸려서 솔로몬 왕과 하룻밤을 같이 지낸 시바의 여왕이 귀국 후에 메넬레크 1세를 출산했다고 하는데
메넬리크는 성장하여 아버지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가서 법률과 신학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인 솔로몬 왕은 그에게 언약궤를 주었고

그 언약궤는 조금 전에 보았던 성궤보관교회 Chapel of the Ark of the Covenant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14세기 초에 에티오피아의 신관 에투샤크라는 인물이 기록한 왕가의 영광 Kebra Nagast이라는 책을 근거로 하는 설이라는데

 

이 책에 따르면 시바 왕국은 홍해의 양쪽 연안으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수도는 에티오피아 고원의 북부에 있는 바로 이 도시 악숨 Axum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내에 있는 교회에는 메넬리크 1세가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는  십계의 석판 즉 언약궤가 보존되어 있으며

교외에는 시바 여왕의 궁전 터와 목욕탕의 터가 있다고 하는데

이제 우리는 언약궤가 보관되어 있다는 교회를 나서서

시바 여왕의 궁전 터를 찾아가는 것이다.

 

 

 

 

 

 

시바의 왕궁 터로 가는 길에 본 악숨 시가지 모습~

 

 

 

 

 

 

 

시바의 여왕 왕궁 터는 악숨 시가지를 벗어나자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주변은 온통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 있다.

 

왕궁 터 바로 앞 모습~

 

 

 

 

 

왕궁 터로 들어서자 길게 건물의 외벽과 건물 주변의 돌로 포장된 길이 보이는데

 

머리 부분에 수많은 꽃을 달고 있는 오래된 선인장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우릴 맞는다.

 

 

 

 

 

 

왕궁 터 뒷쪽에는 왕궁 터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먼저 전망대로 올라가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왕궁 ~

 

 

 

 

 

왕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다.

 

크기도 작고~

 

 

 

 

 

 

스산하고 쓸쓸하게 버려져 있는 왕궁 터에서 활력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왕궁 터 주변을 오가는 현지인과 가축들 뿐이다.

 

왕궁 터 안으로 들어서본다~

 

 

 

 

 

 

돌계단 위로 오르면 판석이 놓여 있는 공간이 보이는데

시바의 여왕 옥좌가 놓였던 장소라고 한다.

 

옥좌가 있었던 장소에 앉아 보신 소감은~~? ㅎ

 

 

 

 

 

 

돌담으로 구획되어 있는 곳들은 왕궁의 각 용도에 따른 실들이라는데

 

크기도 왜소하고 과연 왕궁이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비록 돌담들만 남았으나 그래도 왕궁이었다니

 

배경삼아 기념 사진도 몇 장 남기자~

 

 

 

 

 

 

스라엘을 통일한 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형제들을 물리친 솔로몬이 부왕을 이어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되었고

 

솔로몬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매우 번창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현명한 판단과 결단력으로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솔로몬 왕의 지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여러 나라 사람들 중에 시바의 여왕도 있었는데

여왕은 솔로몬 왕에게 4백 킬로그램이 넘는 황금과 보석 몰약 훈향 향유 육계 등을 바쳤다고 하며

 

당연한 일이지만 솔로몬 왕도 그에 합당한 물건을 답례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주었다고 한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어떠한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는 바가 없지만

그녀는 이 회견에 크게 감격하고 만족했다고 하고~

 

 

 

 

 

 

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이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은 솔로몬 왕의 책략에 의한 것으로

 

그는 시바 여왕의 미모와 현명함에 완전히 빠져서 그녀를 환영하기 위한 파티를 성대하게 개최하였고

그 테이블에는 향신료를 듬뿍 사용한 요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솔로몬 왕은 시바의 여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는데~

"나의 빈객이 되신 이상 내 허가 없이는 그 어떠한 음식도 입에 대서는 안됩니다."

그녀는 이 말에 따르기는 했지만 향신료 때문에 밤중에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물을 한잔 마셨는데 그 일로 약속을 어겼다고 솔로몬 왕에게 다그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고 하고~

어찌 되었든 솔로몬 왕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시바의 여왕에게 푹 빠져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모양으로

솔로몬 왕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여 그가 죽고 나서는 시바 왕국에 묻히기를 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사에 등장하는 세계의 유명한 여왕들과 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두 여인에 관한 것인데

 

클레오파트라 7세와 시바의 여왕이 바로 그들이다.

 

흑인이었을까~~?

과연 흑인으로서 그토록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비로소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그의 부장이자 계승자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 제32왕조의 파라오가 되었고

 

클레오파트라는 그 후손이니 흑인이라 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시바 왕국은 남예멘에서 시작되어 홍해를 건넌 에티오피아까지 왕국을 확장해서 이루어졌으니

시바의 여왕 역시 흑인이 아닌 셈이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사랑 이야기를 접하다보니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솔로몬은 그의 거처인 궁중에 수백명의 후궁과 첩을 거느렸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무려 7백 명의 왕비와 3백 명의 후궁이 있었다고 하니~~ㅎ

 

솔로몬은 이집트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파라오의 딸과도 결혼하였는데

솔로몬이 거느린 여인들의 대부분이 인근 국가 출신이었다고 한다.

 

백제 의자왕의 삼천 궁녀는 궁녀들이었으니 차치하고

왕건에 딸린 수십명의 후궁들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이 아닌가~~ㅎ 

 

 

 

 

 

 

왕궁이라해도 별로 돌아볼 것이 없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세워져 있는 건 뭐지~

 

 

 

 

 

 

작은 오벨리스크들이다.

 

경계도 모호한 들판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듯한 모습이 안쓰럽다.

 

 

 

 

 

 

작은 오벨리스크 사이로 염소 몇 마리를 앞세우고 오고있는 여인이 보이는데

 

이 단촐한 행렬이 오히려 더 시선을 끌어당긴다.

 

 

 

 

 

 

 

 

 

 

염소를 몰고 가는 여인의 등짐이 삶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온다.

 

괜한 측은지심으로 바라봐서일까~~

 

 

 

 

 

 

 

 

 

 

여인과 염소가 건너간 도로에 다시 앙증스런 차량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시바의 여왕 궁전 터를 나선다.

 

 

 


La Reine De Saba 시바의 여왕 / Raymond Lefe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