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ton Brother and Sister, 1871 William Bouguereau
마치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그림~
윌리암 부게로 William Bouguereau의 작품이다.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로 엄격한 형식과 기법, 완벽주의 정신으로 작품을 그렸다는 부게로는
1825년 라 로셸(La Rochelle)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843년부터 1850년까지 에콜데보자르에서 공부했으며 피코(Picot)의 문하에서 작업했고
50년 동안 해마다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했다는 부게로는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은 완성하지 않은 스케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살롱에 전시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대부분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도 형식과 기법면에서 매우 엄격하고 신중했으며
고전주의적인 조각과 회화를 깊이 있게 탐구했으며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완전하게 익힌 다음에야 비로소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The Storm, 1880 Pierre-Auguste Cot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피에르오귀스트 콧 Pierre-Auguste Cot의 그림~
피에르 그림의 공통점은 여자의 얼굴은 아주 잘 드러나지만
남자의 시선은 여자를 향해있어 관객이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들다는 점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분명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데
남자의 얼굴은 유난히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여자의 심각한 표정의 얼굴을 보게 되고
그 옆에 있는 남자의 웃는 얼굴을 보는데
이러한 상반된 표정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고 한다.
Springtime, 1873 Pierre-Auguste Cot
피에르의 그림은 항상 동화 같은 사랑을 가득 담고있는데
두 남녀를 감싸고 있는 주변은 인적 드문 숲이어서 밀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찰나의 사랑을 담아내 아름다워보이는데 한 몫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시대에서도 이 그림은 아름다웠는지 파리 살롱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후세에 와서도 서양인들이 작가 이름은 몰라도 그림은 아는 여전히 사랑 받는 그림으로
사랑의 대명사처럼 쓰여서 많은 상품으로 만들어져 팔릴 정도라고 한다.
Young Mother Gazing at Her Child, 1871 William Bouguereau
The Horse Fair, 1852-55 Rosa Bonheur
로사 보뇌르 Rosa Bonheur는 19세기 프랑스의 여성화가로
평생 동안 동물 세계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전문적인 동물화가로 활약했다고 한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최초의 여성 예술가이기도 하고~
로자 보뇌르는 1841년 파리 살롱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해
1853년까지 매해 살롱전에 참가했는데 초기에는 동물 조각을 출품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직접 동물을 사육했고, 동물원과 주변 숲에서 동물을 관찰했으며,
1845년에는 몇 달 동안 농가에 머물면서 소, 양, 염소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고 하며
경찰의 허가를 받아 남장을 하고 파리의 도살장이나 가축 품평회장에 가서
해부학을 공부하고 말의 힘찬 움직임을 연구했다고 한다.
보뇌르는 그녀의 나이 26세 때인 1848년 살롱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이듬 해 작품 《니베르네의 쟁기질 Ploughing in the Nivernais》로 프랑스 미술 시장에 진출했으며
1855년 완성한 작품인 이 말 시장 The Horse Fair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이 작품을 윈저성에서 전시하기를 원했다고 하고~
그녀의 작품은 영국과 미국의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높은 가격에 판매되었고
또한 같은 해 제작한 《오베르뉴에서의 건초 수확 Haymaking in the Auvergne》으로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고 한다.
The Dead Christ with Angels, 1864 Edouard Manet
파리에서 태어난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는
네덜란드·에스파냐 화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풀밭 위의 점심》《올랭피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더욱 주목을 받아
후배 화가들에게 인상주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지만
정작 마네 자신은 인상파와 동일시되는 것을 싫어하고
인상파 그룹의 전시회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기도 하였으나
한때는 인상파의 기법을 채용하여 그림을 그린 일도 있다고 한다.
전시장 밖의 기념품 판매대에서는 전시된 작품들을 다양한 형태의 기념품으로 제작해서 팔고 있었다.
Cupid and Psyche, before 1893 Marble Auguste Rodin
로댕이 큐피드와 프시케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만든 작품이다.
프시케는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인간 여자로 본인의 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온 사람들조차 신에게 바칠 물건들을 그녀에게 바쳤다고한다.
이 상황을 질투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녀의 아들 큐피드를 내려보내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라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의 실수인지 프시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인지 큐피드 자신이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고 한다.
아프로디테가 내린 벌은 유효했으므로 그녀에게 청혼하는 남자는 없었고
진실을 안 그녀의 부모님은 신탁을 물릴 수 없으므로 결국 그녀를 왕국에서 떠나보내기로 했고
그녀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도움으로 아무도 없지만 아름답고 호화로운 곳에 도착해서 살게 되었는데
이 때 결혼한 남편인 큐피드를 밤에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결혼 할 때 큐피드는 자신의 얼굴을 궁금해 하지말고 보려고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프시케는 한밤 중에 큐피드가 잠든 틈을 타 등불에 불을 붙인 채 그의 얼굴을 보았고
절세미남인 큐피드를 보고 놀란 프시케는 그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려 가까이 다가가는 도중에
등불의 기름을 그만 큐피드에게 흘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잠에서 깬 큐피드는 프시케의 행동에 분노하고 실망해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창 밖으로 날아가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Madame X, 1907 Marble Auguste Rodin
The Hand of God, 1907 Marble Auguste Rodin
이 작품은 강인한 손에 한 쌍의 남녀가 얽혀있는 모습이다.
한 손에 들어갈 만큼 작은 남녀는 마치 거대한 손이
거친 돌덩이에서 이들을 창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댕이 존경했던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그저 "돌 속에 갇힌 형상을 꺼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로댕은 돌 속에서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대강의 모습만 갖춘 채 아직 확실하게 인간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은 두 형상과
이와는 반대로 사실적으로 묘사된 거대한 손의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여러 점의 복제품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의 명성이 점차 올라가면서 많은 소장가와 기관들에서 주문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댕 작품을 수집했던 아우구스트 티센(August Thyssen), 카를 야콥센(Carl Jacobsen), 심슨 부인(Mrs. Simpson) 등의 요청에 의하여
여러 점이 복제되었고 그의 여생에서 이러한 복제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작품 역시 네 점의 복제 주조물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Eternal Spring, 1907 Marble Auguste Rodin
Eternal Spring 영원한 봄~
여자는 자기에게 키스하기 위해 몸을 구부리는 그녀의 파트너에게
의도적으로 항복하는 자세로 몸통을 구부린다.
로댕은 작품에 다양한 스타일의 고전적인 제목을 부여하여
작품의 명백한 에로티시즘을 나타냈는데
제피르 Zephyr와 지구 Earth로 처음 불린 이 작품의 숨은 타이틀은
큐피드와 프쉬케로서 1897년 파리 살롱에 전시되었는데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는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이라고 한다.
Pygmalion and Galatea, 1908 Auguste Rodin
피그말리온 Pygmalion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라고 한다.
키프로스섬의 여인들은 섬에 온 나그네를 박대하였다가
아프로디테 (Aphrodite, 로마신화의 비너스)의 저주를 받아 나그네에게 몸을 팔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피그말리온은 여성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어 결혼할 마음이 들지 않았고
대신 뛰어난 자신의 조각 솜씨를 발휘하여 상아로 여인상을 만들었는데
실물 크기의 이 여인상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상에 갈라테이아 Galatea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랑하였는데
갈라테이아는 아키스 (Acis)를 사랑한 바다의 님프 이름이기도 하다고 한다.
아프로디테 축제일에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상같은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으며
그의 마음을 헤아린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한다.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갈라테이아와 결혼하였고 이들의 결혼식에는 아프로디테도 참석하였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피그말리온의 고향 땅 이름을 따서 파포스 (Paphos)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이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1913년 《피그말리온》이라는 희곡을 발표하였고
이 신화에서 비롯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는데
이는 피그말리온이 여인상을 사랑해 여인상이 생명을 얻은 것처럼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해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고 한다.
여기서 갈라테이아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님프인 갈라테이아는 젖빛 여인이라는 뜻으로
바다의 신 네데우스와 네데이스의 하나인 도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고 하는데
시칠리아섬 앞바다에 살면서 목신(牧神) 판의 아들인 양치기 미소년 아키스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세이스에 따르면, 외눈박이 거인족 키클로페스의 하나인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에 의해 눈이 멀기 전에 갈라테이아를 짝사랑하였는데
흉칙한 외모와 들짐승들도 두려워할 정도로 난폭한 성질을 지닌 폴리페모스는
살상 행위를 그치고 갈라테이아의 눈에 들기 위하여 애썼으나
갈라테이아는 오직 아키스만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두 연인은 폴리페모스가 부르는 긴 사랑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 노래에는 갈라테이아에 대한 사랑과 원망, 아키스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노래를 마치고 이리저리 헤매던 폴리페모스는 두 연인을 발견하고는
분노가 폭발하여 아키스에게 큰 바위를 던져 죽였다고 한다.
바다의 님프인 갈라테이아는 바위 밑으로 흘러 나오는 연인의 피를 강이 되게 하였고
이 강은 아키스의 이름을 따서 아키스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는데
존 게이가 가사를 쓰고 헨델이 작곡한 합창곡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등이 전한다고 한다.
The Age of Bronze (L'Age d'airain), 1906 Auguste Rodin
실제 사람 크기의 조각상 The Age of Bronze 청동시대
18개월에 걸쳐 제작되고 살아 있는 모델에 기초한 이 조각상은
인간이 깨어 있는 순간을 고통이나 기쁨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1877년 브뤼셀에서 처음으로 정복자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이 작품은
같은 해 말 파리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전시되었다고 한다.
이 조각상이 프랑스 파리의 1877년 살롱에서 처음 전시되었을 때
로댕은 작품에 최소한 4명의 인물이 있다고 해 거짓말이란 비난을 받았는데
이 혐의는 강력하게 부인되었고
오히려 이 소문에 의해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길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이 혐의는 오히려 로댕에게 이득이 되었다고 한다.
1876년 로댕은 이탈리아로 성지 순례를 떠났는데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플로렌스(Florence)와 성 로렌초 성당(San Lorenzo Chapel), 그리고 로마(Rome)를 여행하면서
그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그가 누구보다도 존경했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생생히 확인한 로댕은
미켈란젤로 작업의 비밀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으며 새로운 조각적 영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브뤼셀로 돌아온 로댕은 1875년 10월 이래로 그가 계속해서 생각했던 남자 누드를 만들기 시작했고
1877년 2월 그는 이 남자 누드의 석고 작품을 브뤼셀 미술가 동인전(the Artistic and Literary Circle)에 전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벨기에의 별(L'Etoile belge)》이라는 잡지에 실린 한 기사에서는
이 작품이 살아있는 모델을 그대로 석고형을 떠서 옮긴 것 같다고 비난하였고
이러한 비난 때문에 겁을 먹게 된 로댕은 이 작품을 청동시대 (L'Age d'airain)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파리의 살롱전에 제출하였는데 작품 심사 위원회는 1880년 2월 청동으로 뜬 이 작품에 대해 거절 통지서를 보냈다고 한다.
로댕의 친구들과 당시 조각가들의 로댕 작품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주장을
튀르케는 확신하고 로댕에게 전의 석고 모형을 다시 청동으로 만들 것을 주문하였는데
그러자 곧 이 청동 작품을 사기 위해 티에보(Thiébaut) 형제 재단 등에서 주문이 들어왔고
살롱에서 거절당한 몇 달 뒤 이 복제품은 재인식되기 시작하여 드디어 살롱에서 3등상을 받게 되는 등
이후 청동 시대는 지속적으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Orpheus and Eurydice, 1893 Marble Auguste Rodin
오르페우스 신화 가운데 미술가들을 가장 매혹시킨 일화로는
단연 에우리디케 Eurydice와의 사랑 이야기가 꼽힌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아폴론)와 그의 9인의 뮤즈 중 우두머리였던 칼리오페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어려서부터 악기 연주와 노래를 잘했고 아폴론은 그런 그에게 헤르메스로부터 선물 받은 리라를 주어 연주하도록 했는데
그는 아르고스 호의 원정에 참가하여 악기를 연주해 폭풍을 잠재우고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익사하게 만드는 마녀 세이렌들의 요사스런 노래로부터 동료들을 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숲의 요정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신혼의 단꿈도 잠시
어느 날 들판으로 놀러 나간 에우리디케는 양치기 아리스타이오스의 끈질긴 구애를 피해 도망가다가
그만 독사에게 복사뼈를 물려 죽게 된다고 한다.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괴로워하던 오르페우스는 결국 그녀를 찾아 저승까지 내려가게 되었고
그의 사랑에 감명을 받은 저승의 신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고 한다.
단 한 가지 그가 지켜야 할 약속은
지상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오르페우스는 부지런히 지상을 향해 올라갔고
어두운 저승 세계를 거의 다 벗어났음을 알리는 이승의 빛이 희미하게 비쳤을 때
방심한 오르페우스는 그만 에우리디케를 돌아보고야 말았고
그 순간 사랑하는 아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결국 그의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는 영영 저승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The Thinker, 1910 Bronze Auguste Rodin
1871년 프랑스 정부는 화재로 불 타 버린 감사원 건물 자리에 최고로 화려한 장식 미술 박물관을 건축하려 하였고
또한 이 박물관에 기념비적인 조각으로 이루어진 문을 설치하기로 하였는데
이것이 지옥의 문 The Gates of Hell이 탄생하게 된 정황이라고 한다.
지옥의 문은 로댕이 1880년부터 죽을 때(1917)까지 제작을 위해 기나긴 여정을 지나온 만큼
그의 가장 중요하고도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작업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한다.
로댕의 이 지옥의 문에는 단독상이나 그룹상으로 유명해진 여러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후에 그 상들에는 고유의 제목이 붙여졌는데 이 생각하는 사람도 그 작품들 중 하나라고 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에 스스로의 몸을 내던지기 전에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팽팽한 긴장감과 사실성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로댕 전기를 쓴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가 뇌가 되었다”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 Heracles를 표현한 것으로
가공할 만한 근육에서는 힘이 느껴지지만
고개를 숙이고 숙고하는 듯한 형상에서 고도의 집중력이 발산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거장인 미켈란젤로 Michelangelo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하여
고전적이며 르네상스적 분위기가 한껏 배어나오고
서글프고 체념적이며 고독한 분위기가 많이 나며
부분적인 근육의 긴장감이나 표현력이 우수하며 고전적이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흔적도 엿보이는 근대 조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고 한다.
The Tempest, carved before 1910 Marble Auguste Rodin
Adam, 1910 Bronze Auguste Rodin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아서
아담의 뒤틀린 불편한 자세에서 미켈란젤로의 두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오른쪽 팔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 프레스코화 아담의 창조와
왼쪽 팔은 피렌체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의 죽은 그리스도가 그것이라고 한다.
로댕 학자 앨버트 엘슨 (Albert Elsen)의 말에 따르면
"이 인물은 삶의 시작과 끝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사이에는 그의 몸이 고문의 존재를 보여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단테의 신곡에 푹 빠진 로댕이 이 얘기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 그의 대표작 지옥의 문인데
그 지옥문 가장 위에 있는 세 망령의 모델을 아담으로 해 완성했다고 한다.
아담과 더불어 이브를 제작하기 위해 로댕은 그의 모델인 안나 아브루제치의 모습을 연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안나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그는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와 형상의 윤곽을 지속적으로 변형, 수정해야 했다고 한다.
로댕은 이 작품을 완성한 이후에
"몸을 구부린 채, 모은 양 팔 안으로 들어갈 듯한 모습을 취한 여인!
바깥을 향한 모든 것을 거부하며, 변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마저도 거부하려는 '이브'의 모습을 보라."고 언급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브의 형상은 가슴 위로 두 팔을 모은 채 어둠 속으로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는 삼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머리와 어깨의 각도가 대각선으로 대칭을 이루면서 공간과의 통일성을 잘 보여주고
각 부분의 묘사에서 특히 인체의 부드럽고 중량감 있는 표현이 섬세하게 잘 드러나고 있는데
인체의 덩어리감이 단순해 보이지만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은
여성 신체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선의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Eve, 1910 Bronze Auguste Rodin
The Walking Man, cast before 1914 Bronze Auguste Rodin
Hand of Rodin, 1917
Inferno, 1908 Fanz von Stuck
Echo, 1874 Alexandre Cabanel
알렉상드로 카바넬의 Echo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숲의 님프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말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제우스가 요정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동안 에코가 헤라에게 계속 말을 걸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였고
마침내 이를 알아채고 화가 난 헤라는 에코가 다른 사람의 말만을 반복하고 그 밖에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의 말에 대답을 할 때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에코는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대답 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라 전혀 상대를 하지 못했고
이에 쇼크를 받은 에코는 숲속 동굴에 틀어박혀서
너무나 큰 슬픔에 몸은 없어지고 목소리만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알렉상드로 카바넬 Alexandre Cabanel은 프랑스의 화가로
대표작으로는 비너스의 탄생이 있는데
고전주의적 작풍으로 역사화·풍속화·초상화로 명성을 떨쳤고
제2제정시대의 관료화가로서 오랫동안 아카데미 원장의 영예를 누렸다고 한다.
알렉상드로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1863년 살롱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였는데
비너스의 모습이 당시의 기호에 부합되기도 하였고 그녀는 부끄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같은 살롱전에서 인상파의 시조인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저속하고 필치가 거칠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U.S.A. 여행 > 뉴욕 워싱턴 보스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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