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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여행/뉴욕 워싱턴 보스턴

메트 The Met에서 만난 인상파의 거장들~

 

 

 

늘날 기금과 기증을 통해 수집된 메트 The Met의 소장품 수는 총 300여만 점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미술품은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작품으로

메트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작품을 많이 보유한 미술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마티스, 르느와르 등의 작품은 1910년 이전에 이미 메트의 소장품 목록에 포함되었고

메트는 당시 혁신적이었던 이들의 그림을 공공 미술관으로 끌어들인 주요 미술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그 그림들을 살펴보자~

 

 

 

 

 

 

 

 

 

전시실로 들어서자 대형 그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무척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The Eruption of Vesuvius, 1924  Johan Christian Dahl

 

 

노르웨이 화가인 요한 크리스티안 달 Johan Christian Dahl의 그림인데

붉은 용암이 금방이라도 화폭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느낌을 준다.

 

 

르웨이 풍경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크리스티안 달 베르겐에서 출생했다고 하는데

코펜하겐의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후, 1818년 드레스덴으로 가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와 친교를 맺고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고

 

매년 여름 고국의 오지를 여행하며 자연의 우뚝 솟은 산과 강, 피요르드의 반짝임

그리고 폭풍과 여울 등을 장대한 구도로 명확히 그렸다고 하는데

 

폭풍 속의 자작 나무 (1849, 베르겐 시립미술관)는 노르웨이 정신을 상징으로 한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The North Cape by Moonlight, 1848  Peder Balke

 

 

요한 크리스티안 달과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페더 발케 Peder Balke의 그림인데

구름을 뚫고 쏱아지는 달빛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는 1832년 노스 케이프를 한 번 방문했지만 그 경험은 남은 인생동안 그의 상상력에 엄청난 도움을 줬다고 하며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달빛이 보여주는 탁 트인 풍경과 인상적인 붓놀림은 발케 스타일의 특징으로 꼽히는데

 

이는 멘토인 요한 크리스챤 달(Johan Christian Dahl)의 자연주의와 대조되는 점이라고 한다.

 

 

In the Studio, 1888  Alfred Stevens

 

 

벨기에의 화가인 알프레드 스테방스 Alfred Stevens브뤼셀에서 출생하고 파리에서 사망했는데

 

1853년 파리로 나가 1855년 안트베르펜의 살롱에 참가하는 한편

1871년까지 파리에 체재하며 그 풍속을 그렸다고 한다.

 

마네와 친교하였으며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세기의 파노라마 그렸다고 하고~

 

 

In the Meadow, 1882-92  Auguste Renoir

 

 

어릴 적에 보았던 카렌다속의 소녀들을 만났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화려하고 풍성한 색채로 미처 알지 못했는데

실제 르누아르의 그림은 서로 맞닿아 흐릿해진 색채로 그 윤곽은 뚜렷하지 않았다.

 

 

누아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무수한 여인들은 삶의 어두움보다는 환희를 노래하는 대상들이었는데

 

그는 웃음, 미소, 꽃, 천사가 된 어린아이, 여신이 된 여인들을 풍성한 색채로 표현하며

삶의 기쁨을 부드럽게 발산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부드러운 표현에 어린아이의 진홍빛 뺨과 통통하게 살찐 팔을 포착시켰고

나부들의 나체에서 아라베스크적인 선을 찾아냈으며

 

그들의 얼굴에는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상적인 우아함과 순진함을 고정시키고자 하였다고 하다.

 


프랑스의 화가인 르누아르는 인상파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빛나는 색채표현을 전개했고

당시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함께 작업하고 서로를 모델로도 이용했는데

 

르누아르와 모네는 특히 각별한 친구여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주 있었으나

그들은 같은 대상을 보고도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러한 르누아르는 1881년 이탈리아 여행시 라파엘로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고부터는

그의 화풍도 마침내 한 전기를 맞이하여 귀국 후 얼마 동안의 작품은 색감과 묘법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즉 담백한 색조로써 선과 포름을 명확하게 그려서 화면구성에 깊은 의미를 쏟은 고전적인 경향을 띤 작품들로

목욕하는 여인들 (1884~1887) 등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 후는 완전히 인상파에서 이탈하여 재차 독자적인 풍부한 색채표현을 되찾아

원색대비에 의한 원숙한 작풍을 확립하였다고 한다.

 

더욱이 1890년대부터의 꽃, 어린이, 여성상 특히 나부(裸婦) (1888) 등은

 

강한 의욕으로 빨강이나 주황색과 황색을 초록이나 청색 따위의 엷은 색채로 떠올리면서

부드럽고 미묘한 대상의 뉘앙스를 관능적으로 묘사하였다고 한다.

 

 

By the Seashore, 1883  Auguste Renoir

 

 

이 그림은 르누아르의 부인인 알린 샤르고 모델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알린이 일하고 있던 식당에서 처음 만났는데

식당은 아틀리에 맞은 편에 있어서 르누아르가 자주 찾던 곳이었다고 한다.

 

알린은 르누아르와 사랑에 빠져 모델 일을 자청했으나

르누아르는 가난한 화가보다는 부자를 만나 결혼하라고 충고하며 알린을 거부했고

 

알린은 이러한 르누아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실에 드나들면서 모델 일을 했으며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던 르누아르는 결국 젊고 아름다운 알린의 열정에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의 영향을 반영하여

르네상스 예술에서의 위엄과 단순함을 인상주의의 광채와 결합시켜 그녀의 얼굴에 표현했다고 한다.

 

그림 속 해변은 디에페 근처의 노르망디 해안이라고 추측하고~

 

 

The Daugthers of Catulle Mendes, 1888  Auguste Renoir

 

 

르누아르의 커틀 멘데스의 딸들.


1879년 르누아르는 성공을 되찾기 위해 그의 친구 Catulle Mendès의 딸들을 그렸고

 

1888년 5월 이 그림을 몇 주 만에 완성하여 곧바로 큰 전시를 열었지만

그의 강렬한 색조와 도식화 된 얼굴은 열렬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상주의 미술 Impressionnism art19세기 후반

주로 1860∼1890년대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화파다.

 

 

19세기에 실증주의와 사실주의의 영향으로 대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운동이 일어나

옥외의 태양 아래에서 자연의 변화무쌍한 순간적 양상을 미묘하게 묘사하는 일이 시도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표현상의 새로운 기법과 주관적 감각의 반영을 중시하는 이들이 생겼고

 

이들은 자연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빛과 대기의 변화에 따라

색채가 일으키는 변화에 흥미를 갖고 사물의 인상을 중시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빛에 따라 사물의 인상이 달라지므로~

 

 

즉 인상주의 이전에는 사물에 고유색이 있다고 생각해 정해진 색채를 사용하였는데

 

인상주의는 사물에 고유한 색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화가가 사물을 볼 때 느껴지는 인상과 감정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자유로우며 순간의 이미지를 포착했기 때문에

그리다 만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며 야외광의 그림이 많다고 한다.

 

 

Young Woman Seated on a Sofa, ca. 1879  Berthe Morisot

 

 

 

 

Madame Georges Capenter and Her Children, 1878  Auguste Renoir

 

 

 

 

Woman with a Parrot, 1866  Gustave Courbet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프랑스의 화가인 쿠르베는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의 사실적 작풍으로

19세기 후반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하여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하고 일상생활에 대해 섬세히 관찰할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고전주의와 같은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표현을 일체 배격하고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의 밀도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상 큰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 나부와 앵무새 (1866)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The Source, 1862  Gustave Courbet

 

 

쿠르베 누드에 관심을 가졌고 즐겨 다루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 은 마네의 올랭피아풀밭 위의 식사와 마찬가지로

제 2제정 당시의 관습적인 아카데미 화풍에 대한 일대 반항이었다고 한다.

 

여인의 육체는 고대로부터 모든 화가와 조각가의 영원한 모델이었고

그 상징적 의미는 언제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 속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거의 모든 누드는 이상화되어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형상으로 그림에 등장하게 되고

여성의 누드는 여신을 묘사한 것으로 대리석 같은 매끈한 피부에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어야만 했는데

은 누드의 뒷모습에서 약간의 신화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지만

 

헤아릴 수 없이 넓은 둔부와 허벅지의 사실적 표현은

예전 여신의 고전적 세련미라든지 이상적 묘사와는 완전히 다른

 

파격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The Woman In the Waves, 1868  Gustave Courbet

 

 

쿠르베가 과거의 여러 미술작품에서 다양한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렸다는 점은

누드화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쿠르베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쿠르베는 자신이 그렸던 본래 양식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르네상스와 로코코의 그림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음란하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누드 모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는데

 

1860년대 쿠르베는 자신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양식으로

감각적인 여성의 누드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Eugene Murer, 1877  Auguste Renoir

 

 

 

 

The Stroller, 1887  Claude Monet

 

 

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인상파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 인상, 일출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고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탐색했다고 하며

 

말년의 수련 연작은 자연에 대한 우주적인 시선을 보여준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1874년 첫 번째 그룹전을 열어 인상, 일출을 출품했는데

 

이 전시를 관람한 비평가 루이 르로이 Louis Leroy는

모네의 인상, 일출 대한 조롱의 의미를 담아 처음으로 인상주의라는 말을 사용했고

 

이런 인상파란 이름은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에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모네는 이후 1886년까지 모두 8회 동안 이어진 인상파 전시에서

5회에 걸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대표적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고 한다.

 

 

Poppy Fields near Argenteuil, 1875  Claude Monet

 

 

 

 

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  Vincent van Gogh

 

 

 

 

Shoes, 1888  Vincent van Gogh

 

 

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작가인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선명한 색채와 정서적인 감화로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반 고흐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수식어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수식 어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넘쳐나는 현대미술을 무색케 하는 세기를 넘어선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을 통해 빈번한 정신적 질환과 근심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37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살아 있는 동안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사후에야 알려진 반 고흐는

현대미술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라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많은 작가들과는 달리

20세 후반까지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하고

 

유명한 작품들은 거의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그려진 작품들로

반 고흐는 900여 점의 페인팅 1,100여 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 총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수많은 자화상을 비롯하여 풍경화, 초상화 그리고 해바라기 등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로 각종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고 하고~

 

 

Women Picking Olives, 1889  Vincent van Gogh

 

 

 

 

Olive Trees, 1889  Vincent van Gogh

 

 

 

 

Roses, 1890  Vincent van Gogh

 

 

 

 

La Berceuse (Woman Rocking a Cradle), 1889  Vincent van Gogh

 

 

 

 

Still Life with Teapot and Fruit, 1896  Paul Gauguin

 

 

랑스 후기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 Paul Gauguin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났고

원주민의 건강한 인간성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가 그의 예술을 완성시켰다.

 

그의 상징성과 내면성, 그리고 비자연주의적 경향은

20세기 회화가 출현하는 데 근원적인 역할을 했고~

 

 

Two Women, 1901 or 1902  Paul Gauguin

 

 

 

 

The Siesta, 1892-94  Paul Gauguin

 

 

 

 

Three Tahitian Women, 1896  Paul Gauguin

 

 

 

 

Water Lilies, 1919  Claude Monet

 

 

 

 

Bouquet of Flowers in a Vase, 1890  Vincent van Gogh

 

 

 

 

 

 

 

미술품보다 놀이에 푹~ 빠진 손녀와 아내~

 

꼬맹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중에 후회 안할런지 몰라~~ㅎㅎ

 

 

Circus Sideshow, 1887-88  Georges Seurat

 

 

묘법을 사용한 19세기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

 

지주 집안 출신으로 조각가인 쥐스탱 르키앙에게서 미술을 배웠고

파리의 국립미술학교에서 욍베르 드 쉬페르빌이 쓴 <절대적인 미술 기호들에 관한 평론>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대비색을 작은 색점들로 병치하여 빛의 움직임을 묘사한  기법을 점묘법이라고 하고

 

이 점묘법으로 그려진 대표적 작품으로는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Une Baignade, Asnières (1883~84)·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86)를 꼽을 수 있는데

 

질서정연하게 찍혀진 순수색의 작은 점들은 너무 작아서 작품을 감상할 때 거의 식별되지 않으나

단지 화면 전체가 빛으로 아른거리는 효과를 자아낸다고 한다.

 

그가 남긴 작품의 양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는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한 시기의 주요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Study for " A Sunday on La Grande Jatte ", 1884  Georges Seurat

 

 

 

 

Corner of the Parc Monceau, 1888  Charles Angrand

 

 

프랑스 화가인 샤를 앙그랑 Charles Angrand

 

파리에서 쇠라, 시냑과 교제하고 신인상주의 화가가 되었고

주로 농촌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Notre-Dame-de-la-Garde, 1905-6  Paul Signac

 

 

폴 시냑 (Paul Signac, 1863-1935)은 프랑스 출신의 화가로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신인상주의 화가이자 이론가라고 한다.

 

팔레트에서 섞지 않은 물감의 색점을 캔버스 위에 찍어, 병치된 색채가 관람자의 눈에서 혼합되게 함으로써

순수하고 밝은 화면을 만들고자 했던 점묘법 혹은 분할주의 기법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신인상주의는

 

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에 의해 개발되었으나, 그는 너무 이른 나이에 갑자기 사망했고

 

이후 신인상주의를 이론화하고 실천하여 후대에 이를 알리고

이 새로운 회화 언어를 수많은 화가들이 시험하게 한 사람은 폴 시냑이었다고 한다.

 

폴 시냑은 조르주 쇠라의 작은 점 대신에

좀 더 넓은 모자이크 조각 같은 사각형 모양의 색점을 이용하여 풍경화 및 초상화를 그렸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쇠라의 이론을 이어받아 점묘주의를 발전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