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 The Met는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1월1일, 5월 첫 번째 월요일을 제외한
주7일 개관을 하는데 금요일 및 토요일은 오전 10시-오후 9시까지 개관하고
일요일-목요일은 오전 10시-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갤러리에서는 펜, 비디오 카메라 또는 셀카봉은 사용할 수 없지만
스틸 사진은 비영리적 용도에 한해 플래시와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허용된다.
유모차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허용되고~
박물관 전역에서 무선 인터넷도 가능하고 오디오 가이드도 지원되는 등
관람자들을 위한 각종 편의가 잘 제공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자유로운 사진 촬영이었다.
물론 플래시를 사용하지 말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그러나 실내 촬영에서도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제약이라고 볼 수도 없었고
이후 뉴욕의 타 미술관 등에서도 같은 상황이었으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유럽의 조각과 장식 미술을 전시해 놓은 갤러리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볼 수 있었던 낯익은 모습의 조각상들도 종종 눈에 띄여서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The Burghers of Calais, Auguste Rodin
14세기 백년전쟁 때 잉글랜드 군대에게 포위당한 프랑스의 칼레 시를 구하기 위해
6명의 시민 대표가 목숨을 바쳤다는 칼레의 시민 일화를 소재로 삼은 기념상이다.
오귀스트 로댕에 의해 1884년에서 1889년 사이에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작품의 소재가 된 칼레의 시민 일화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칼레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본토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백년전쟁 당시 칼레를 차지하는 것이 프랑스군과 잉글랜드 군 양쪽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였는데
1347년 잉글랜드 왕 에즈워드 3세가 이끄는 군대는 칼레 시를 점령했고,
1년 여에 걸쳐 잉글랜드 군에 저항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학살당할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의 지도자급 인사 6명을 자신에게 넘긴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이에 시민 대표 6명은 다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하여 교수형을 각오하고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성문의 열쇠를 가지고 에드워드 앞으로 출두했는데
다행히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한 태아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한
왕비 필리파 에노 Philippa of Hainault의 간청을 듣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칼레의 시민 일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지지만
시민 대표들이 도시민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놓았다는 기본적인 줄거리는 거의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상류층이 지니는 도덕적 의무를 가리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의 전형적인 예로 꼽히고 있는데
오늘날 상당수의 연구자들은 이 일화가 실화라기보다는
시민 대표들이 항복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행한 형식적인 의례가
후대에 점차 애국적이고 희생적인 미담으로 부풀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1884년 칼레 시는 고심 끝에 로댕에게 기념상 제작을 의뢰했는데
로댕이 1889년 완성한 기념상은 사람들이 기대한 애국적 영웅의 늠름한 모습이 아니었고
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는 6인의 인물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거나 곧 닥칠 죽음에 침통해하는 것처럼 보여서
초인적인 영웅이라기보다는 극히 인간에 가까운 이 모습은 곧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기념상은 당초 세워질 예정인 칼레 시청이 아니라
한적한 리슐리외 공원에 세워졌다가 나중에야 다시 칼레 시청 앞으로 옮겨질 수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공공 기념상들이 높은 받침대 위에 위풍당당하게 설치되는 것과 달리
로댕은 칼레의 시민 상을 최대한 지면에 가깝게 세워서
마치 지면 위의 평범한 인간들이 고뇌하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 했다고 한다.
로댕의 The Martyr라는 작품이 있는 곳에 카페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간단한 간식과 커피를 마시고 쉬고 있는 가족을 카페에 남겨둔 채
나머지 조각상들을 관람했다.
Judith and Holofernes, 1675-77 Giovan Battista Maestri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조각상도 있다.
유디트 Judith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10대 여자 영웅 중 한명으로
앗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 Holofernes가 이스라엘을 점령하러 왔을 때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밤시중을 드는 척하며 장군의 침소에 들어서
장군이 잠이 들었을 때 목을 베어 나라를 구했다는 이야기인데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소재이기도 하다.
Lucretia, Philippe Bertand 1663-1704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가슴에 칼을 꽂고 죽어가는 모습의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루크레티아 Lucretia라는 기원 전 500여년 전 여인으로
고대 로마의 최후의 왕 타르쿠이니우스의 왕자 섹스투스에 의해 능욕을 당한 후
남편에게 복수를 구하고 자살했다고 한다.
이에 남편 콜라티누스는 부르투스 등의 협력을 얻어 타르쿠이니우스 일족을 로마에서 추방하고
왕정은 이로써 끝이 났다고 전해진다.
조각상을 스케치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무엇을 그리는가 봤더니~
잘 그렸네~
다시 카페로 들어가면서 카페 앞의 로댕 조각을 다시 살펴봤다.
The Martyr, 1913 Auguste Rodin
순교자 The Martyr라는 명칭이 붙은 이 젊은 여인이 죽어가는 모습의
조각상도 지옥의 문에 있다고 한다.
처음의 작은 모형을 나중에 크게 만들었다는 이 조각상은
죽음의 보편성과 벌거벗은 모습에서 무관심 그리고
마지막 투쟁의 고독한 외로움은 불러 일으킨다고 한다.
다시 들어온 카페에서 꼬맹이가 자기보다 더 작은 꼬맹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서로 반가운가보다.
카페의 유리창 밖으로는 센트럴 파크가 보인다.
공원 내 오벨리스크도 보이고~
커피숍을 나서서 지나는 통로에도 많은 조각상들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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