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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ern Asia 여행/스리랑카

스리랑카 시기리아의 물의 정원과 테라스 정원 Water Garden & Terraced Garden~

 

 

 

기 5세기 스리랑카는 타밀족의 침입으로  수도 아누라다푸라는 함락되고

이후 무려 27년간이나 타밀의 지배를 받으며 싱할라  왕조는 붕괴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고 하는데

 

이런 혼란기에 다투세나라는 위인이 나타나 타밀 세력을 몰아내고 아누라다푸라를 수복시켰다고 한다.

 

 

그는 왕으로 등극하여 싱할라 왕조를 계승하였는데 그에겐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부인은 왕이 되기 전에 얻은 부인으로 그저 평범한 신분의 여인이었고

다른 부인은 왕이 된 후 결혼한 왕족 출신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두 부인 사이에 각기 한 명씩의 아들이 있었는데 평범한 부인으로부터는 샤파 왕자를 얻었고

왕족 부인으로부터는 갈랴나 왕자를 얻었는데

 

이복형제로 태어난 이들은 서로 성격이 확연히 달라 형 카샤파는 호전적이며 성격이 급했고

동생 목달라냐는 논리적이며 차분했다고 한다.

 

 

 

 

 

 

 

 

 

시기리아 바위산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해자는 크게 둘로 나눌 수가 있는데

 

바위산을 중심으로 남서쪽 가든 지역에는 해자가 있는데 남서쪽 가든 지역을 감싼 해자와 성벽의 길이는 정면 900m,

측면 즉 북서쪽 성벽은 약 800m에 이르고, 이 해자에는 악어를 키워 방어하는데 용이하게 하였다고 한다.

 

동북쪽은 주거지역으로 주거지역을 감싼 성벽은 조금 작게 조성되어 있는데 

시기리아 바위를 둘러싼 양쪽 성벽은 정면 900m, 측면 1.500m에 이른다고 한다.

 

 

 

 

 

 

 

 

 

흔적만 남아있는 성벽 위에서는 선생들께서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왜 그리 째려보셔~~?

 

 

 

 

 

 

 

 

 

세월이 흘러 다투세나 왕이 늙어감에 따라 왕위 계승 문제가 대두 되었는데

 

싱할라 전통으로는 당연히 장자인 카샤파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순리지만

왕의 마음에는 둘째 목갈랴나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늘 천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것에 대해 열등의식을 갖고 있던 샤파 왕자는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급히 지지 세력을 규합해서 쿠테타를 감행하여 부왕을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고

 

이어 목갈랴나를 죽이러 갔지만 이복동생은 이미 왕궁을 빠져나가 바다를 건너 남인도로 탈출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쿠데타로 옥좌에 오른 샤파는 이후 심각한 정신 분열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불안하여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고,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그는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으면서 점차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탈피하고자 고민 끝에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철옹성 왕궁을 건설하려 마음 먹고

부하들을 시켜 이러한 조건을 가진 요새를 찾으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오랜 세월 승려들의 수행 장소로 쓰고 있던 바위 요새를 찾아내었는데

정글 한가운데 377m나 우뚝 솟아있는 이 바위 요새는 마치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으로

 

만약 산 위에 성을 세운다면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하여 483년 축성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샤파는 이곳에서 수행 중이던 승려들을 모두 쫓아내고 성 밖으로는 악어를 키우는 해자를 만들고

안으로는 물의 정원 조성하였다고 한다.

 

또 바위산 곳곳에 기뢰를 설치하여 외부 침입을 대비한 돌의 정원 테라스 정원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스핑크스 같이 생긴 사자상을 조성하고

그 목구멍으로 사람이 다니는 통로를 만들었다.

 

예술가이며 정신이상자이기도 했던 카샤파 왕은 바위산 정상에 수영장, 연회장을 갖춘 화려한 궁전을 완성했지만

카샤파가 시기리아로 천도한 지 14년이 흐른 497년, 타밀의 지원을 받은 남인도로 도망갔던 이복동생 갈랴나에 의해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후 목갈랴나는 아누라다푸라로 수도를 다시 옮기고 시기리아는 승려들의 수행 장소로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 후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시기리아는 1898년 영국군 장교이자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면서

1,4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현재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연못과 긴 수로 그리고 수압을 이용한 분수로 정원을 꾸며놓아 의 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 정원을 만든 주목적은 건기에 사용할 물을 보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각의 연못은 왕실목욕탕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목욕탕보다는 연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물의 정원에서 시기리아 바위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우리 일행 모습이다.

 

 

 

 

 

 

 

 

 

왕궁이 있었던 시기리아 바위산과 연못 모습~

 

 

 

 

 

 

 

 

 

수로를 따라서 물이 흐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진입로를 따라 양쪽으로 균형있게 조성되어 있는 물의 정원 모습~

 

 

유적을 보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점점 위용있게 다가오는 시기리아 바위산~

 

 

 

 

 

 

 

 

 

진입로 역할을 하는 이 물의 정원 우기만 되면 모든 연못에 물이 찬다고 한다.

 

 

 

 

 

 

 

 

 

제법 깊이 파인 곳도 있다.

 

 

이곳에서도 이 유적을 관리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고~

 

 

 

 

 

 

 

 

 

계속 안으로 들어가니 바위산 바로 아래에도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사각의 연못을 지나서 진입로를 따라오다 보면 진입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원형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여름 궁전 Dry Season Palace이라 하며 이렇게 조성된 물의 정원은 가로 700m, 세로 500m에 이른다고 한다.

 

 

 

 

 

 

 

 

 

물의 정원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평지가 끝나면서 바로 바위 아래쪽으로 진입로가 이어지고

이곳부터 조금씩 경사가 시작되고 길 주변에는 많은 바위들이 있는데

 

이곳을 돌의 정원 Boulder Garden이라고 한단다.

 

 

 

 

 

 

 

 

 

돌의 정원 목적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방위시설인데 바위와 바위 사이를 석축을 쌓아 막으면서

진입로를 돌려서 만들어 일종의 성벽 역할을 할 수 있게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돌의 정원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테라스 정원 Terraced Garden도 경사를 평지로 만들기 위해

돌로 쌓은 축대 안쪽에 흙을 넣어 평지로 만든 모양이 테라스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염려 놓으셔~ 열심히 따라가고 있으니~~ㅎ

 

 

바위 아래 파여진 바위 동굴이다.

 

 

 

 

 

 

 

 

 

바위 동굴에 대한 안내판이다.

 

 

 

 

 

 

 

 

 

승려들이 수행을 했던 바위 동굴 모습이다.

 

 

 

 

 

 

 

 

 

테라스 정원과 바위 동굴 모습~

 

 

 

 

 

 

 

 

 

바위와 바위 사이로 교묘하게 만들어 놓은 진입로 모습~

 

 

계속하여 시기리아 바위산을 향해 한걸음씩 오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