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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Europe 여행/러시아

피터 대제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

 

 

상트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

 

피터 대제의 도시~

 

그 이름은 도시의 수호자인 성 베드로 Peter 에서 따왔다지만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에 불타올랐던

바이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피터대제 Peter I the Great가 건설했다는 도시~

 

러시아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도시 중 하나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어선 감회가 남다른 이유는

발틱해 연안의 늪지대에 마법의 도시 처럼 단기간에 건설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를 실현시켜 당시까지 유럽사의 주류에서 비껴나 있던 러시아를 서구화·근대화의 길로 이끈

표트르 대제의 발자취를 직접 느껴 볼 기회이기도 한 때문이다.

 

네바 강 하구의 음침한 섬들 위에 도시를 건설하자고 했을 때 사람들은 조소했다지만

거침 없는 대제는 스스로 오두막에 기거하며 관리들과 노동자들을 독려했고

 

전 러시아에 석조 건축을 금지시키고 모든 자재를 네바 강 하구로 실어오게 하여

100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로 이어진 도시를 건설하고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표트르 대제~

 

한 지도자의 힘과 역량이 얼마나 위대하고

국가의 흥망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인터넷에서 빌려온 러시아 지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역 앞에서 거리 모습을 살펴본다.

 

역사 주변에는 고풍스런 건물들 모습도 보이는데

거리 위로 지나가는 수많은 전선들은 그동안 보아왔던 북유럽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어지럽게 늘어진 전선과 궤도를 따라 트램도 달리고

 

각종 차량들도 거리를 누빈다.

 

 

 

 

 

 

 

 

중앙역답게 많은 여행객들이 제각기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우리도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올라 호텔로 향한다.

 

 

 

 

 

거리의 간판이 우리가 러시아 땅에 들어왔슴을 실감케 해준다.

 

복잡하게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연실 셔터를 눌러본다.

우리 어릴적에는 러시아 땅을 밟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횡단 보도를 건너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여느 서방 국가와 같은 평온함이 느껴진다.

 

시티 투어 버스도 보이고~

 

 

 

 

 

드디어 네바강과 거리를 잇는 수많은 다리들도 보인다.

 

흔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돌과 뼈의 도시라고 부른단다.

 

늪지대 전체를 돌로 메운 대공사는 각지에서 수많은 돌을 운반해와야 했고

불과 3년 동안 15만 명 이상의 인명을 희생시키고 탄생했다는 무덤 위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1703년 표트르대제가 당시까지 유럽사의 주류에서 비껴나 있던 러시아를 서구화· 근대화의 길로 이끌기 위해

핀란드 만과 네바 강 어귀의 늪지대 위에 건설한 거대한 계획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구의 다른 곳에서라면 몇 세기에 걸쳐 일어난 일들을 불과 50년 만에 급속하게 이루어냈다고 하며

10년 만에 늪지의 한가운데에 건물 3만 5000채가 들어섰다고 한다.

 

늪지대의 심연 위에 돌로 세운 도시 그리고 심연을 메우고 있는 수많은 뼈~

그래서 러시아 정교의 공식적인 축복 속에 탄생한 이 도시는 축복과 저주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도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표트르 대제가 여러모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늪지대 위에 도시를 건설한 것은 무척 복합적인데

우선 발트해 연안 특히 당시 수로와 육로 교통 연결의 요충지이던 네바 강 어구가 지니는 전략적 의미라고 한다.

 

당시 전쟁 상대이던 스웨덴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 지역을 확보하는 길 뿐이기도 하는데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는 유럽으로의 창구 역할을 하는 문화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서구를 향한 피터 대제의 강렬한 열망을 응축한 도시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인 것이다.

 

 

 

 

 

 

 

 

성당과 공원~

 

그리고 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의 동상이 보인다~

 

 

 

 

 

이 유명한 표트르의 청동기마상을 받치는 화강암 대좌는 높이 12미터 둘레 30미터에 달한다고 하는데

약 66만 킬로그램에 이르는 이 화강암을 옮기는데만도 1000명과 1년 6개월 이상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화강암이 발견된 숲에서 수도까지 13킬로미터를 처음엔 도르래로

그 다음엔 특수 제작한 거룻배로 옮겨야 했다고 한다.

 

 

 

 

 

공원 옆의 성 이삭 성당도 지나고

 

수많은 운하로 연결된 거리로 들어선다.

 

 

 

 

 

이 도시를 보면서 표트르 대제의 행적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알렉세이 14세 황제의 후처 나타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서

10세 때에 궁중혁명으로 크렘린에서 쫓겨나 모스크바 근교 프레오브라젠스코에 마을로 이사했다고 하는데

 

정규 교육이라고는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으나 1682년 이복형 이반 5세와 공동으로 황제에 올라

이복 누나 소피아와 병립하여 정무를 보다가 왕위를 계승한 지 15년이 지난 1697년

표트르 대제는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절단을 이끌고 유럽 방문 길에 올랐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와 사절단은 18개월 동안이나 유럽에 머물렀고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선진 문화를 둘러보며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도 했다고 하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앞선 조선술을 이용하여 배를 만드는데도 참여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여러 도시를 둘러보면서 운하의 도시로 알려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암스테르담은 작은 섬과 섬 사이를 다리로 연결하고

열악한 환경을 거꾸로 이용하여 당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달한 도시였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의 암스테르담으로 만들려고 한 것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야치 섬에는 스웨덴 군대에 위협을 줄 목적으로 지은 나무 요새가 있었는데

이 나무 요새를 돌로 바꾸어 다시 짓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서 공사 진행을 살폈는데

1703년 여름부터는 아예 공사 현장이 잘 보이는 페트로그라드 섬에 작은 오두막을 짓도록 하고

호화로운 모스크바 궁전을 마다하고 작은 오두막에서 생활하면서 공사를 점검했다고 한다.

 

오두막에는 코트와 나침반 그리고 노를 저어 이동할 수 있는 작은 보트 정도만 있을 정도로

표트르 대제는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유럽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표트르 대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백성들의 복장을 유럽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모든 남성은 턱수염을 자르도록 했고

복장도 활동하기 편한 것으로 입도록 했다고 한다.

 

복장과 외모에서부터 러시아의 변화를 시작한 것이다.

 

 

 

 

 

외모와 복장의 변화를 시도한 표트르 대제는

1701년 핀란드 만과 네바 강이 만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것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을 발표하자 관리들은 물론이고 왕족들까지 깜짝 놀라며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당시 북유럽에서 오랫동안 러시아에 대적했던 스웨덴과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척박한 오지였기 때문이란다.

 

 

 

 

 

 

 

 

1709년 스웨덴과 벌인 폴타바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관리들의 반대는 자연스럽게 사그라지게 되었고

표트르 대제를 지지하는 관리들과 상인들은 완성되지도 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가 어느 정도 틀을 갖추기 시작한 1712년에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 왔는데

 

표트르 대제의 오랜 꿈이자 러시아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

계획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렇게 탄생하게 됐다고 한다.

 

 

 

 

 

 

 

 

레닌의 10월 혁명후 한때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상트페테르부르크~

 

1991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 해체된 후 시민들은 투표를 실시했고

본래의 이름으로 되돌리는 안이 채택돼서 되찾은 이름이 바로 페테르부르크란다.

 

소련 시절의 러시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스크바와 함께 떠올리는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가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인 것이다.

 

 

 

 

 

도시 곳곳을 흐르는 운하가 무척 인상적이다.

 

운하를 따라 도로가 형성되어 있고 그 길따라 오래된 건물들이 나열해 있고~

 

 

 

 

 

웅장한 교회 건물들도 보이고~

 

 

 

 

 

궁전 같은 건물들도 보이고~

 

 

 

 

 

 

 

 

강변을 따라 마치 창의 끝 부분처럼 생긴 금빛의 뾰쪽한 탑이 보이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함께한 이곳은 페트로파블롭스키 요새 Petropavlovsk란다.

 

 

 

 

 

네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무척 운치있다~

 

 

 

 

 

강을 따라 흐르는 배들도 보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12년 새로운 수도가 되어

1918년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기기 전까지 러시아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고

위대한 문학가와 예술가를 탄생시킨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흔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창이라고 하는데

러시아가 정치 경제 예술 분야에서 진정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도시이기 때문이다.

 

 

 

 

 

시가지를 돌고돌아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앞 도로 주변으로는 약간의 녹지도 조성되어 있는

조용한 거리에 우리가 묵어갈 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호텔 앞 거리 모습~

 

 

 

 

 

 

 

체크인하는 동안 호텔 내 숍을 잠시 둘러봤는데

 

러시아 특유의 인형들이 눈길을 끈다.

 

 

 

 

 

 

 

 

 

아내와 같이 묵은 호텔방~

 

처음 배정 받은 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들어선 방안은 수증기로 자욱하고

욕실 바닥은 온통 핏빛이어서 얼마나 놀랐던지~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니 욕실 기구를 정비하다 미쳐 잠그지 않은 탓인지

낡은 배관을 타고 배어나온 녹물이 욕실 바닥을 벌겋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방 배정을 해줄 때 가이드가 미리 일침을 놓은 말이 생각났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방은 바꿔줄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러나 우리 방 상태를 돌아본 가이드와 호텔측에서 우리 방을 다시 정해줬다.

 

그리고 당부한다.

바꿔준 방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해 달라고~

 

방도 크고 욕실도 크고

게다가 전실까지 달려있는 것을 보니 나름 특실 축에 속하는 모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전체의 배관이 매우 오래되고 낡아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모양인데~

 

마치 지금의 러시아 현실을 마주한 느낌이다.

 

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