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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ern Europe 여행/러시아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아르바트 거리로~

아르바트 거리에서~

 

러시아 황실도자기 로모노소프 포슬린 Lomonosov Porcelain 매장 앞에서

거리 모습을 몇 컷 더 담아 보았다.

 

스탈린 양식 건물을 포함한 오래된 건물들 너머로

말쑥하게 단장한 현대식 건물들도 보인다.

 

 

 

 

 

바로 앞의 녹색 차량 모습이 궁금해서 살펴봤는데~

 

주정차 단속하는 렉카차인가~~?

 

 

 

 

 

아르바트로 향하는 차창으로 본 시가지 모습~

 

 

 

 

 

다리도 보이고~

 

차량의 전면으로 높이 솟은 스탈린 고딕 양식의 거대한 건물이 나타나는데

러시아 외무성 건물이란다.

 

 

 

 

 

외무성 건물 앞을 지나치는데 꼭대기의 첨탑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고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가 오히려 초라하게 보일 정도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도착한 아르바트 거리 입구~

 

 

 

 

 

거리 입구의 건물들 외관도 멋스럽다~

 

 

 

 

 

거리 입구는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한 편이었고~

 

 

 

 

 

거리의 초입에서 만난 모습~

 

의상도 특이했는데 커다란 뱀을 목에 두르고 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거리 중앙에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주로 기념품이나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아르바트라는 명칭은 아랍 단어인 라바드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시장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는데 과거 짐마차가 많이 다니던 길이라 짐마차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16세기의 아르바트는 중요한 교역 장소였고 공예장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며

18세기에는 귀족들이 사는 모스크바 최고의 주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엔 귀족 예술가 학자들이

그리고 소련 시절에는 고위 관료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이 거리에 파란색으로 치장한 건물이 있는데

푸시킨 박물관이란다.

 

그 벽면에 푸시킨의 모습과 함께 안내문이 적혀 있는데

제일 하단에 1831이라 새겨 놓았다.

 

푸시킨은 1831년 2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 약 3개월의 신혼 시절을

이 건물 2층에서 보냈고 그 삶의 흔적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건물 앞에는 푸시킨과 그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서 많은 기념 촬영을 하기도 하는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시나 문학을 잘 알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의 뇌리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고

쉽게 떠올려지는 시의 첫구절이 아닌가~

 

러시아인에게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시인인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발전뿐 아니라 러시아어 자체의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어 표현에서 부족함을 느낄 때 그는 과감하게 새로운 단어나 표현을 고안해내기도 했고

풍부한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문장 표현은 러시아 문학을 푸시킨 이전과 이후로 나누게 할 정도였으며

 

서유럽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던 19세기 러시아에 푸시킨은 유럽의 모든 문학 장르를 도입시켰으며

서정시 서사시 소설 단편 에세이 희곡 등 모든 장르에 걸쳐 창작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고 하고

 

푸시킨이 아니었다면 이반 투르게네프, 이반 곤차로프, 톨스토이 등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고 한다.

 

그런 푸시킨이 사랑하는 아내로 인하여 최후를 맞았으니~~ㅠ

 

푸시킨과 그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

 

푸시킨과 결혼하기 전부터 러시아 상류 사회 사교계의 꽃이었던 곤차로바는

결혼 후 조르주 단테스와의 염문설에 휩싸였다고 하는데

 

단테스는 끈질기게 푸시킨의 아내 곤차로바에게 구애했고

이는 당시 러시아 상류 사회 최대의 화제로 떠올랐다고 한다. 

 

모욕감과 함께 아내와 자신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푸시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했지만

단테스가 나탈리아 곤차로바의 언니와 결혼함으로써 결투 신청은 없던 일이 됐다고 하는데

 

이후에도 단테스의 구애는 계속되었고 더구나 푸시킨에게 익명의 편지가 배달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내에게 배반당한 남자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식의 악의에 찬 조롱이 담긴~~

 

푸시킨은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이 편지를 쓴 것으로 보고 그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냈고

양아버지 헤케른에게 보낸 모욕적인 내용의 편지로 인해 단테스는 푸시킨에게 결투를 신청했으며

 

결국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30분경에 이루어진 결투에서 푸시킨은 중상을 입고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매혹적인 자태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1831년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푸시킨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곤차로바는 1844년 재혼을 했다고 하는데

 

이 결투는 러시아 궁정 내부 세력이 푸시킨을 제거하기 위해 꾀한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푸시킨 동상을 떠나 거리를 따라가본다~

 

 

 

 

 

거리 주변은 고풍스런 건물들로 이어져 있고

 

거리 중앙 부분은 형형색색의 간이 매장들이 점령하고 있다.

 

 

 

 

 

매장을 감싸고 있는 사람들 구경도 즐거움이다~~

 

 

 

 

 

갑자기 거리 중앙에 세워진 무대가 길을 가로 막는다.

 

무대 위에는 쌍쌍의 젊은 친구들이 늘어서 있고~~

 

 

 

 

 

호기심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ㅎ

 

무대 옆에는 이쁜 아가씨도 있고~

 

 

 

 

 

주변 모습도 구경하며

 

무대 앞쪽으로 다가가본다~

 

 

 

 

 

무대 앞쪽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듯한 친구들을 볼 수 있었는데

춤을 가르쳐주고 있는 아가씨가 무척 앳띠어 보였다.

 

얼굴도 그렇고 몸매도 가냘퍼 보였는데~

 

 

 

 

 

잠시 구경해 봤더니~

 

이 행사는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이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을 무대로 불러들여 즉석에서 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었다.

 

 

 

 

 

의외로 많은 친구들이 스스럼없이 무대에 올라 동참을 한다.

 

잠깐 구경하는데 앳띠어 보였던 춤 선생?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탄탄한 몸매도 그렇고~~ㅎ

 

이 아가씨를 보면서 문득 자이브를 추면 멋질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 그런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갸냘픈 허리 만큼이나 되는 탄탄한 장단지와 종아리 때문이었나~~?

 

 

 

 

 

 

 

 

이 골목에서 고서적 등을 파고 있는 노점상도 종종 볼 수 있는데

 

거리를 누비는 활기찬 모습의 젊은이들과 함께 이런 모습들이

우리의 인사동이나 대학로와 같은 곳이라는 인상을 안겨 주는 모양이다.

 

 

 

 

 

 

 

 

 

불라트 샬보비치 오쿠자바 Bulat Shalvovich Okudzhava

 

양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모습의 멋진 이 동상은

러시아 음유시인 불라트 오쿠자바 (1924~1997)의 동상이라고 하는데

 

2002년 5월 그의 생일에 맞춰 세운 동상으로​

어릴 적 그의 집 마당에 서 있던 아치에서 시인이 걸어나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스탈린까지 비판하는 통렬한 풍자와

연민 동정 슬픔을 버무린 노래시를 ​기타 치면서 낭송했던 대중 시인인 그는

 

특히 모스크바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아르바트를 찬미하는 시도 여럿 남겼다고 한다.

 

그가 어릴 적 그루지아인 아버지가 소련 공산당에게 사형당했고

아르메니아인 어머니도 18년이나 옥살이를 해 일찍부터 독재에 저항하는 의식을 키워왔다고 하며

 

그의 시들은​ 출판이 금지됐지만 사람들 입과 녹음 테이프를 통해 소련 안팎에서 사랑받았고

198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해금돼 시를 출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 큰 애들?이 아이스크림을 배경으로 사진 놀이를 하고 있네~~ㅋ

 

 

 

 

 

큰 카메라가 몇대 보인다.

 

단순한 아마추어들은 아닌것 같은데~

 

 

 

 

 

아르바트는 신 구 아르바트 거리로 나뉘는데

관광객들이 찾는 이 곳은 구 아르바트 거리다.

 

그런만큼 골목에는 시대를 거슬러 가는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보인다.

 

 

 

 

 

옛 거리 모습을 찍은 대형 사진도 걸려 있고~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는 한산한 느낌이었는데

 

거리의 소소한 풍경들이 즐거움을 안겨 준다.

 

 

 

 

 

다시 노점 책방도 보이고~~

 

 

 

바흐탄고프 국립 모스크바 극장

 

 

 

 

국립 모스크바 극장 인근의 맞은 편에 각종 낙서로 가득찬 골목이 보이는데

두 아가씨가 서성이는 이 골목은 빅토르 최의 이름이 붙여진 작은 골목이다.

 

길이가 채 100m가 안 되는 이 골목은 그가 무명시절에 노래를 불렀다는 골목인데

 

매년 8월 15일은 그가 28세의 나이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은 날로

그 날이 되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젊은이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스찌나 쏘야라는 이 벽은 그에게 바치는 낙서가 형형색색으로 쓰여져 있는데

아직도 꽃다발이 바쳐지고 담뱃불을 향처럼 피워놓는 곳도 있다.

 

고려인 2세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최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그룹 키노의 리더로 유명한 록가수다.

 

러시아 록 음악의 최고참인 유리 솁축도 러시아 록 음악의 시초라고 인정하고

소련 역사를 움직인 13명 중의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고 한다.

 

정치적인 메시지로 가득 찬 반항적인 가사의 곡으로 젊은이들을 흔들었던 그는

영화를 찍기도 했으며 영화 홍보를 위해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다고 하며

 

굉장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아파트 빌딩의 보일러실에서 화부로 일하며 살았는데

그것은 그가 소련정부의 환영을 받지 못했던 데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소련의 잡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그의 사후 그에 대해서

 

“그를 믿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이 다름없는 유일한 록커가 빅토르 최이다.

그는 그가 노래 부른 대로 살았다. 그는 록의 마지막 영웅이다."라고 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