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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ia 여행/호주

호주 아웃백 Outback의 거점 도시 앨리스 스프링스 Alice Springs를 가다~

 

 

웃백 Outback~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멜번을 출발한 비행기가 앨리스 스프링스에 다가가자

창밖으로 붉은 사막이 펼쳐진다.

 

아웃백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지형 중 하나로

오스트레일리아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건조 지역을 가리키는 말인데

 

붉은 토양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사막 때문에 개발이 어려워

인구가 매우 적은 지역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90%는

면적으로 약 5%에 해당하는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내륙부 지역은 인구 밀도도 매우 낮고 해변을 바라보며 오지를 등지고 산다는 뜻으로

웃백 Outback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가 이곳에 온 주목적은 루루 Uluru를 보기 위함이고~~

 

 

 

 

 

 

 

앨리스 스프링스 공항 모습이다.

 

하얀 점선을 따라가면 터미널이고~

 

 

 

 

 

 

 

터미널로 이어지는 길은 차양이 쳐져 있다.

 

때로는 이런 공항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고

여행의 묘미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다.

 

마치 소풍나온 듯한 기분도 들고~

 

 

내가 오는 줄은 어찌 알았을꼬~~ㅋ

 

 

 

 

 

 

 

공항 청사로 들어선다~

 

 

 

 

 

 

 

널찍한 공항 청사는 텅 비어 있다.

 

수화물 찾는 곳은 청사 한켠에 있고~

 

 

 

 

 

 

 

청사 한켠에 묘령의 아가씨가 앉아 있는데

입고 있는 옷의 재질이 특이하다.

 

비키니 모습도 그렇고~

 

 

 

 

 

 

 

썰렁한 분위기의 청사 내부에 볼거리로 만들어 놓은 모양인데

조금 쌩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ㅎ

 

 

 

 

 

 

 

렌트카 부스도 많이 보이는데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공항 밖으로 나서본다~

 

 

 

 

 

 

 

어느 휴양지를 찾아온 듯한 공항 밖의 모습이 맘에 든다.

 

차를 타고 도착한 호텔 정원의 많은 야자수들이

더더욱 휴양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간단히 체크인을 마치고

 

시내 구경에 나선다~

 

 

 

 

 

 

 

정원의 이녀석들을 왜이리 몰려 있는지 모르겠다.

먹을거라도 떨어져 있나~~?

 

거리로 나서니 한산한 모습이다.

 

 

 

 

 

 

 

골스러운 거리를 앞서가는 세 청년은

이 땅의 원주민 애보리진 Aborigine이다.

 

 

원주민 애보리진을 처음 마주한 것은 호텔 입구에서였는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도 못 생겼을까하는~

 

일가족이 앉아 있었는데 시선이 마주치자

희미하게 미소짓는 듯한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이후 두세번의 같은 경험을 하고서 그 다음부터는

애써 마주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애보리진의 실제 모습을 가까이에서 담은 사진은 한장도 없다~

 

 

 

 

 

 

 

조용한 거리에서 사람 모습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쩌다가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대부분은 애보리진이다.

빈둥거리는 느낌을 주는~

 

 

애보리진  Aborigine은 원주민 토착민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Australian origine의 의미로 호주 원주민을 가리키기도 한단다.

 

애보리진은 세계의 어느 종족보다도 얼굴이 못생긴 편인데

원숭이나 고릴라처럼 얼굴의 이마 부분이 툭 튀어나온 특징 때문에 진화가 덜 된 듯한 느낌을 주고

 

초기의 영국인들은 이들을 인간으로 분류하는 것조차 주저해서

원숭이류 중 가장 많이 진화한 유인원인 오랑우탄 정도로 취급하였다고 한다.

25,000~40,000년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이들 원주민은

불과 200년 남짓한 세월 동안에 영국계 백인들에 의해 참혹한 비운을 맞게 되는데~

 

 

 

 

 

 

 

국은 미국 독립 전쟁의 여파로 더 이상 죄수들의 유형지로 미국을 활용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오스트레일리아를 새로운 유형지로 골랐고

 

1788년 1월 초대 총독인 아서 필립이 11척의 선박에 759명의 죄수와

수백 명의 선원을 이끌고 도착한 것이 본격적인 오스트레일리아 이주 역사의 시작이었지만

 

평화롭고 한적했던 애버리진의 생활 무대는 범죄자들의 유형지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보리진들은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지도 않고

자연이 제공하는 먹이를 찾아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유랑생활을 했는데

 

그런 연유로 영역 다툼으로 인한 부족간의 전쟁도 필요 없었고

외부의 침략도 없었던 탓에 자연스럽게 문명도 수렵에 필요할 정도만 발달했다고 한다.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자유를 누렸고 행복을 얻을 수 있었으며

구태여 문명의 발달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애보리진의 참혹한 역사는 백인들의 이민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검은 전쟁 빼앗긴 세대라는 것이다.

 


인들이 처음 들어올 당시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은 문화적 수준이 매우 낮아서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 사용되던 부메랑조차도 몰랐다고 하는데

 

식민지 건설 초기의 백인들은 이곳 원주민을

사람 모습을 한 동물로 여겨 짐승을 사냥하듯 마구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런 학살은 19세기 초부터 약 30년간이나 자행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그들이 가지고 온 매독과 같은 질병이 동조하여

 

태즈메이니아 섬에 사는 애버리진이 거의 전멸되다시피 했는데

이것을 은 전쟁 Black War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1876년 마지막 혈통을 가진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이 죽음으로써

이 섬의 원주민은 완전히 대가 끊겼다고 하고~

 

 

어버린 세대라고도 불리는 빼앗긴 세대라는 말은

 

19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원주민 동화 정책을 펴던 호주 정부가

 

가난한 부모에게서 떼어내 좋은 조건에서 양육한다는 명복으로

원주민 자녀를 부모에게서 강탈한 후 고아원에 방치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월한 백인의 종교와 문화를 가르쳐 문명화시킨다는 구실로~

 

 

 

 

 

 

 

 

 

 

 

 

 

 

 

시의회 건물 주변인데

이곳에서 보이는 사람들 대부분도 원주민 애보리진들이다.

 

애보리진을 타지역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 앨리스 스프링스 거리에서는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것은 기후 조건이 열악하고 척박한 내륙 사막 지역으로 원주민들이 내몰린 탓인데~

 

전체 애보리진의 수는 약 20만명으로

현재 호주 인구의 약 2%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와 호주의 원주민 애보리진이 주는 느낌은 천양지차다.

 

마오리 남자들은 잘 생긴데다 부러울 정도의 체격을 갖추고 있고

여인들도 예쁘게 생겼는데

 

애보리진은 같이 마주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Ugly하다.

 

또한 이들이 받고 있는 대우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 마오리들도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불평등이란 백인한테는 주어지지 않는 특권이 있고 그 대표적인 것으로

뉴질랜드 인근 해역의 수산물에 대한 권리는 전적으로 마오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하니

 

불평등도 불평등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주를 여행하면서 원주민 애보리진에 대한 내용은

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전부일 정도로 특별함이 없었다.

 

 

 

 

 

 

 

그늘도 변변치 않은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무척 고역스러웠다.

 

덥기는 하고 쉬어갈만한 특별한 곳도 안보이고~

 

 

 

 

 

 

 

거리를 다니는 택시도 없다.

택시를 이용할려면 별도로 불러야 한다고 하니~

 

자전거 탄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ㅎ

 

 

 

 

 

 

 

거리를 가로지르는 철로에 차단 시설도 안보인다.

 

애써 이만큼 걸어왔는데 여기서 돌아갈 수도 없고~~ㅠ

 

 

 

 

 

 

 

 

 

 

 

목적지가 지척임을 알려주는

 

거리의 이정표가 반갑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