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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ern Asia 여행/스리랑카

스리랑카의 담불라 석굴 사원 Dambulla Caves Temple~

 

 

 

구를 들어서서 본 불라 석굴 사원 Dambulla Caves Temple 모습이다.

 

 

담불라 석굴 사원은 기원전 3세기부터 스님들의 석굴 수행 장소였는데 이곳이 사원으로 변모하게 된 것은

기원전 1세기 바라감 바후 1세 때라고 한다.

 

기원전 103년 급작스런 타밀의 침공으로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도성을 탈출한 바라감 바후 1세는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아바야기리 사원 승려들의 도움으로 남쪽 66km 지점의 담불라 바위산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고

 

15년이 지난 기원전 89년이 되어 타밀을 쫓아내고 아누라다푸라에 복귀한 바라감 바후 1세는

그 고마움으로 그가 몸을 숨겼던 이곳에 두 개의 석굴 사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후로도 파라쿠라마 바후 대왕, 니상카 말라, 키르티 스리 라자싱하 왕에 의해 석굴 사원이 확장 완성되었는데

이들 왕들은 나라에 큰 국난이 있을 때면 불심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차례로 사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석굴 입구 복도 모습이다.

 

이제 석굴 안으로 들어가 보자~

 

 

 

 

 

 

 

 

 

신왕의 석굴 사원 Deva Raza Lena Vihara으로 불리는 제 1석굴 사원이다.

 

 

사원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제 1번 사원은 신왕의 석굴 사원으로 불리는데

여기서 말하는 신왕은 민간 신앙 속에 등장하는 신의 왕인 샤크라 Sakra를 말한다고 한다.

 

이 사원이 신왕의 사원인 이유는 14.3m 길이의 석가모니 열반상을 샤크라가 완성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인간이 아닌 신의 작품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열반상을 중심으로 주변에 다섯 신상이 더 있는데

 

 

열반상 발쪽에 있는 있는 신상은 아나존자의 신상으로 스승을 잃고 슬퍼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신상 주변 벽면과 천장에는 다양한 프레스코 그림과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 석굴 사원은 기원전 1세기 때 바라감 바후 1세 조성된 사원이라고 한다.

 

 

 

 

 

 

 

 

 

다음 석굴 사원과 연결되는 중간 문 모습이다.

 

 

 

 

 

 

 

 

 

잠시 석굴 밖으로 나서 봤다.

 

 

석굴 사원에서 본 입구 모습이다.

 

 

 

 

 

 

 

 

 

입구 쪽에서 본 석굴 사원 모습이고~

 

 

 

 

 

 

 

 

 

 

이 석굴 사원은 인도의 아잔타 석굴 사원처럼 처음부터 동굴을 파내고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동굴에 스님들이 머무르면서 조금씩 확장해 나가 지금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큰 바위산 중간에 커다란 틈이 있는데, 이 아래에 조성된 공간의 전면을 막아서 복도를 만들고

각각의 석실 사원은 이 복도를 이용하여 출입하는 형태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보면 마치 하나의 동굴,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몇 개의 동굴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제2석굴 : 마하라자대왕 사원 Maha Raja Lena Vihara

 

 

가장 넓은 면적의 제 2석굴 사원은 일명 대왕의 사원으로도 불리는데

여기서 대왕이란 담불라 석굴 사원을 세운 기원전 1세기의 바라감 바후 1세 칭한다고 한다.

 

또 다른 학설로는 이 사원을 황금으로 입힌 니상카 말라 왕 칭한다고 한다.

 

 

 

 

 

 

 

 

 

이 사원의 크기는 가로 27.2m, 깊이 23m에 입구 쪽의 가장 높은 곳이 6.4m로

다섯 사원 중 규모가 가장 크고 흥미로운 사원이라고 한다.

 

약 60여 기의 각종 신상과 수천의 아름다운 문양과 신상이 벽과 천장에 프레스코화로 가득 차있다.

 

형태도 다양하고 신상들도 다양하여 좌상, 입상,와상뿐만 아니라

관세음보살, 미륵부처 및 바라감 바후 1세와 니상카 말라 왕의 신상도 조성되어 있다.

 

 

 

 

 

 

 

 

 

석굴 안에 조성된 불탑인데 열한 분의 불상에 둘러싸여 있다.

 

 

이 제2석굴 오른쪽 중앙에는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바닥에는 그 물을 받기 위한 그릇이 있다.

 

이 물은 신성한 감로수로 불리는데 아무리 긴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고

비가 집중적으로 오는 우기에도 똑 같은 양이 일정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문쪽으로 조성된 와불상 모습이다.

 

 

 

 

 

 

 

 

 

 

 

 

 

 

 

 

 

 

 

 

 

 

 

 

 

 

 

 

 

 

천장 중간에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은 싯다르타께서 큰 깨달음을 얻기 전 마왕 마라 Mara가 무시무시한 무기로

선정에 든 싯다르타를 위협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석굴 왼쪽 천장에는 싯다르타의 탄생에서 성장, 출가, 성도, 전법, 입멸, 다비, 사리탑 조성까지 그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천장에는 마왕 마라가 선정적인 세 딸을 보내 싯다르타를 유혹하나 실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아래의 입상은 이 사원을 조성한 바라감 바후 1세 실제 크기의 상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맨 몸의 상반신에 치마를 입고 있는데

기원전 1세기 고대 싱할라 왕의 복장이라고 한다.

 

바라감 바후 1세 상의 오른쪽 불상은 비타르카 무드라라는 설법상이고~

 

 

 

 

 

 

 

 

 

제 2석굴에서 제 3석굴 사원으로 들어선 모습이다.

 

 

제 3석굴은 위대한 새로운 사원 Mara Alt Vihara로 불리는데

 

이 석굴 사원은 싱할라의 168대왕 키르티 스리 라자신하 왕 의해 조성된 사원이라고 한다.

 

 

 

 

 

 

 

 

 

영국 식민 시대에 왕조의 명맥만을 유지하던 시기에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키르티 라자신하 왕은

모든 일체의 비용을 자신의 힘으로 제공하여 1780년에 이 사원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그의 생애 후반기에 해당하는데 그는 서구 세력을 불교의 힘으로 스리랑카에서 몰아내고자

지극 정성으로 이 사원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모든 면에서 제2석굴만은 못하지만 넓이 27.4m, 깊이 24.5m, 최대 높이 11m에 이르는

넓이로 전체 사원 중에서 두 번째로 큰 사원이라고 한다.

 

 

이 사원의 조성자인 키르티 스리 라자신하 왕의 동상이

긴 수염과 왕의 복장을 갖춘 모습으로 함께 조성되어 있다.

 

 

 

 

 

 

 

 

 

마카라 문양으로 광배를 장식한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고

 

 

19m에 달하는 큰 와불상이 조성되어 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섰다.

 

 

마지막 석굴 앞쪽에는 작은 연지가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