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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ern Asia 여행/스리랑카

스리랑카 폴론나루와의 수수께끼 석입상과 왕궁터~

 

 

 

리랑카에서 가끔 만나는 호수는 정말 넓다.

 

 

우기와 건기의 구별이 뚜렷하고 농업이 주였던 나라답게 일찌감치 치수에 무척 신경을 쓴 덕분인데

 

잘 갖추어진 저수 시설과는 별개로 그만큼 생산성이 따라주지 못한 점이 의문이다.

 

 

 

 

 

 

 

 

 

저수지 주변 모습이다.

 

 

 

 

 

 

 

 

 

폴론나루와에서의 첫 번째 유적지로 가는 길인데 작은 기념품 가게에 예쁜 모자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이 듬직한 아저씨는 뭔가 팔아보겠다고 우리 일행이 가는 길목의 바닥에

 

기념품을 주섬주섬 내려놓는데 누구 한 명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소와 새가 서로를 배려하듯 조용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비쳐진다.

 

 

잠시 후에 만난 수께끼 석입상 Mystery Statue~

 

수께끼 석입상 Mystery Statue으로 불리는 4m 높이의 이 석상의 이름이 수수께끼 석상이 된 이유는

이곳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성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석상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그 어떤 기록도 없는 의문 덩어리의 석상이라고 한다.

 

인간으로 보기에도 비정상적인 형상이고, 부처님으로 보기에도 일반적인 부처님의 형태와는 너무도 달라 해석이 불가능한 석상으로

일설에는 인도에서 오신 아가스타야 스님 표현했다고 하고, 다른 설은 폴론나루와를 건설한 파라쿠라마 1세 모습이라고도 하지만

 

밝혀진 것이 없어 여전히 수수께끼 석입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미스테리 석입상 주변 모습이다.

 

한가로히 풀을 뜯고 있는 소들 모습이 평화롭기만하다.

 

 

소몰이 아저씨 모습~

 

 

 

 

 

 

 

 

 

정면에서 아저씨 모습을 담아봤다.

 

선한 인상의 전형적인 시골 노인 모습이다.

 

 

소들과도 작별을 고하고~

 

 

 

 

 

 

 

 

 

여전히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기념품을 파는 아저씨~

 

하루 종일 얼마나 팔까~?

 

 

다음 행선지로 가면서 담아본 모습들이다.

 

 

 

 

 

 

 

 

 

 

 

 

 

 

파란 초지와 숲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소와 새들~

 

 

 

 

 

 

 

 

 

 

 

 

 

 

가끔씩 사원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차량 기사들이 차를 멈추고 모여드는 곳~

 

 

단체 티켓팅을 하는 모습인데 관리소의 모습이 참으로 열악하다.

 

 

 

 

 

 

 

 

 

유적지 입구를 들어섰다.

 

 

Citadel 안내판에는 왕궁터에 대한 개요와 함께 배치도도 그려져 있다.

 

 

 

 

 

 

 

 

 

화려했던 왕궁의 모습이 거대한 벽돌 벽만 쓸쓸하게 남아 있다.

 

 

7층으로 만들어졌던 왕궁은 3층까지는 벽돌로 지어졌고

 

나머지 4개 층과 지붕은 나무로 지어졌는데 현재는 벽돌 벽만 남아있는 형태다.

 

 

 

 

 

 

 

 

 

왕궁 Royal Palace에 대한 안내판이다.

 

 

10세기 아누라다푸라에서 남동쪽 폴론나루와로 수도를 옮긴 싱할라 왕조는

 

파라쿠라마 바후 1세 때 이곳에 거대한 왕궁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왕궁은 본관만 가로 31m, 세로 13m의 규모로 당시의 기술로는 획기적인

 

7층에 30m 높이로 조성된 왕궁이었다고 한다.

 

 

 

 

 

 

 

 

 

총 공사기간이 7년 7개월이 걸린 이 왕궁은 30개의 튼튼한 벽과 기둥으로 만들어져

 

모두 1,000개의 방과 두 개의 거대한 홀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55실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 장엄했던 왕궁은 13세기 초 스리랑카를 침입했던 남인도 판디아 왕조 마가에 의해 파괴되고 불태워졌는데

 

현재도 일부 벽에는 시꺼멓게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벽돌 벽에 남아있는 구명들은 서까래를 끼웠던 구멍이라고 한다.

 

 

 

 

 

 

 

 

 

잘 만들어진 계단도 있다.

 

 

 

 

 

 

 

 

 

서양 관광객들 모습에서 벽돌 벽의 거대한 스케일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넓게 펼쳐져 있는 왕궁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