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outh-East Asia 여행/대만

타이완에 건설된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라는 영국 영사관의 다채로운 모습을 구경하고~

 

다거우 영국 영사관  打拘英國嶺事館 의 내부를 돌아봤다.

 

 

당시에 사용했던 범선들을 모형으로 전시해 놓았다.

 

 

 

 

 

 

 

뒤쪽 벽면에 전시해 놓은 그림으로 된 영사관 전경이다.

 

 

그 앞은 예쁜 화분으로 장식해 놓았고~

 

 

 

 

 

 

 

영사관 건물 내에는 이 지역 역사를 알리는 전시관과 기념품 및 특산물을 파는 가게가 있으며, 당시 죄수들을 수감했던

 

감옥도 남아 있다.

 

 

 

 

 

 

 

영사관 내부 모습이다.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 2세 모습도 있다.

 

 

 

 

 

 

 

영국 왕실의 도자기도 전시되어 있고, 귀족 부인들이 사용했던 부채도 있다.

 

 

 

 

 

 

 

판매용으로 내어 놓은 다양한 왕실 관련 기념품들이다.

 

 

 

 

 

 

 

 

 

 

 

지역 특산물인 차도 소개되어 있다.

 

 

 

 

 

 

 

기념품점 내부 모습이다.

 

 

다시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영사관 건물 앞에서 본 가오슝항 모습이다.

 

 

영사관 앞의 석재 구조물~

 

경비 초소쯤 되었나 보다.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다.

 

 

무척 가파르게 만들어 놓았다.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돌계단 주변의 나무들이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신비스러운 나무뿌리들이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계단 중간쯤에 앉아 있는 노랑머리의 서구인~

 

 

Robert Swinhoe라는 초창기 영사라고 한다.

 

 

 

Robert Swinhoe (1836~1877)는 영국 최초의 대만 부영사 겸 총영사였는데, 영사관 임기 동안 영국은 부영사에서 총영사로

 

영사 직위를 승격했다고 한다.

 

 

그는 대만 주재 영국 영사관의 총무에 선구적인 공헌을 했는데, 그의 잘 알려진 외교 경력 외에도 Swinhoe는 저명한 생물

 

학자였다고 한다. 여가 시간에 그는 새로운 종의 표본을 수집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자주 방문했고 그 결과를 영국에 발표

 

했으며, 많은 대만 종은 그의 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그는 샘플을 대영박물관으로 보냈고 그곳에서 대만 고유종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며, 따라서 이런 고유종 중의 하나인 Rock-

 

Monkey는 국제적으로 대만 최고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돌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언덕 위의 건물과 아래쪽 건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안내판이다.

 

 

 

 

 

 

 

 

 

 

 

건물 후면부에 만들어 놓은 조각과 그림이다.

 

 

British medical missionary, Maxwell

 

의료 선교는 서양인들이 대만인들을 전도하는 중요한 행위 중 하나였다고 한다.

 

 

1865년 5월 28일 Takow에 도착한 James L Maxwell은 최초의 영국 의료 선교사이자 영국 장로교에서 파송된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타이난에 주둔하여 동문 밖 칸시 거리에 교회와 진료소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소문에 의하면 그가 한족을 죽여 뇌를 추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 현지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지방 정부

 

는 그가 떠나야 한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타구 치후로 돌아가 교회를 짓고 치후 병원을 세웠는데, 타이완 최초의 근대식 서구화 병원이었다고 한다.

 

당시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안구 질환과 말라리아는 대만 남부에서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이었다고 한다.

 

 

Maxwell의 치료 기록에 따르면 안과 질환이 그의 치료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러

 

한 치료는 환자의 가족, 친척 및 관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시연되어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독특한 구조물도 뒤뜰 한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용도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제 건물 전면부로 가보자~

 

 

 

 

 

 

 

영사관 전면 뜰에 만들어 놓은 다양한 조각상~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것들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청나라 관리가 양복을 입은 서구인들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면하고 있다.

 

 

 

 

 

 

 

1858년 텬진 조약이 비준된 후 대만은 항구를 개방하여 서양 사업가와 선교사들이 대만에 올 수 있게 되었는데, 타협하지

 

않은 서구인들의 사업행위와 대만 사람들이 들어본 적이 없는 종교에 대한 설교가 더해지면서, 대만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몹시 분개했고 서양인들을 두려워하여 둘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1868년 7월 1일에 취임한  Takow의 영국 영사 대행 John Gibson은 기독교인들의 죽음과 함께 교회 방화 사건과 장뇌 압수

 

사건에 대해 극도로 분개했고, 그들은 1868년 11월 17일 타구 영국 영사관에서 청나라 관리와 직접 만나 교섭했지만 합의

 

에 이르지 못하고 안핑 포격 사건으로 악화됐는데, 이것은 Takow의 이전 영국 영사관에서 열린 영국과 중국 간의 가장 중

 

요한 협상 중 하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