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리랑카

(71)
스리랑카 캔디 불치사 주변의 다채로운 모습들~ 불치사 안에서 바라본 불치사의 측면 모습이다. 불치사 전면으로 보이는 도로 건너편 모습이고~ 불치사 건너편에도 출입문이 있는데 작은 탑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사원인 듯 싶다. 건너편 사원 안으로 들어서는 관광객 모습도 보인다. 불치사 내에 설치되어 있는 향과 향유를 봉양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불꽃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다. 온 가족이 총출동한 듯한 젊은 현지인 가족의 모습도 보인다. 향을 피워놓은 모습이다. 불치사 경내의 예쁜 꽃도 담아보고~ 불치사 출입구에도 많은 꽃이 놓여 있었는데~ 미처 꽃을 준비하지 못한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꽃을 사는 모양이다. 불치사를 나와서 다시 신발을 신으시는 울 마나님~ 스리랑카의 사원 안에서는 모두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엷..
화려하게 꾸며진 스리랑카 캔디의 불치사~ 불치사는 싱할라 건축을 대표하는 사원으로 현지에서는 '부처님의 사리가 있는 궁'이란 뜻을 가진 '달라다 말리가와'로 불린다고 한다. 불치당 뒤에 있는 새로 건설되었다는 법당 건물 안 모습들이다. 화려하게 치장된 법당 안 모습들이다. 법당 제일 안쪽에는 부처가 모셔져 있다. 불상 좌우 모습이다. 불상 전면 천장 모습인데 우리의 닫집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법당 양쪽 벽면 상부에는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이 그림은 부처가 열반하는 모습을 그린 듯 했다. 다비하는 모습이고~ 다비 후에 칼링가 왕에게 치아사리가 전달되는 모습이다. 불치를 지켜내는 수난의 시기를 그려놓은 그림 같다. 포르투갈인들의 불치를 없애려는 시도 외에도 계속된 수난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어졌는데 1998년 힌두교 테러..
스리랑카 캔디의 불치사 Temple of the Tooth~ 불치사 경내에서 바라본 불치사 입구 모습이다. 불교 경전인 대반열반경에 따르면 기원전 543년 인도 쿠시나가르에서 석가모니께서 열반 하신 후 다비를 치르고 다비 후에 나온 사리를 8등분하여 당시 부처님과 직접 인연이 있는 강대국에 차례로 배분하고 늦게 도착한 나라를 위해 항아리와 다비를 한 재, 그리고 송곳니 치아사리를 배분했다고 한다. 그 때 인도 동부의 강력한 군주국이었던 칼링가 왕국은 이 송곳니 치아사리를 배분받게 되었고 성스러운 불치사를 세워 불치를 보존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기 362년 당시 칼링가에 찾아온 대 기근과 이교도의 침입이 이어져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여 더 이상 불치의 보존이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칼링가 왕은 꿈에서 계시를 받고 자신의 딸인 헤마말라 공주를 시켜 이 성스러운 치..
캔디의 대표적인 볼거리 불치사로 가는 길~ 캔디의 레스토랑을 나서서 불치사로 가는 길이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긴 마하웰리 강의 중류에 위치한 캔디는 비교적 기온이 낮고 비가 자주 오는 기후로 인해서 세계적인 차의 대명사인 실론티와 싱할라 왕조의 부를 지탱할 수 있었던 향신료의 최대 산지라고 한다. 이곳 캔디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영국이 들어오기 전 포르투갈, 네델란드 식민시대에 '칸다 우다 라타'라 불렀다는데 이 의미는 '산 속의 땅'이라는 의미이고, 또 '칸다 우다 파스 라타'로도 불렸는데 이 의미는 '산 속의 다섯 나라'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이 긴 이름을 줄여서 칸디아 Candea로도 불렀는데, 반면 싱할라 인들은 위대한 도시 혹은 수도를 의미하는 '마하 누하라'로 불렀다고 한다. 산 속에 위치를 잡은 ..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던 캔디~ 캔디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식당이다. 식당에서 바라다보이는 캔디의 모습을 담아봤다. 캔디는 인구 50만 명이 살고 있는 스리랑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내륙분지에 위치한 역사도시이다. 캔디는 해발 500m의 고지대에 위치해서 저지대에 위치한 수도 콜롬보에 비해 기온이 낮고 쾌적하여 스리랑카 부자들의 별장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도시는 분지로 형성되어 중심 도심에 외곽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는 지형인데 이 산 쪽에 별장들과 고급 호텔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숲으로 둘러 싸여있는 주택가를 조금 가까이 당겨본 모습이다. 산등성을 따라 올라가며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캔디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 1815년까지 많은 외침과 내란에도 불구하고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싱할라 왕조의..
스리랑카인의 정신적인 고향 캔디로~ 캔디로 가는 도중에 본 모습들이다. 도로 옆으로 상점들이 밀집해 있고 상점들에는 각종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차도와 보도와의 특별한 경계가 없다. 그저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도로의 경계선이 전부다. 보이는 모든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비슷하듯 특별한 것은 없을 터이지만 우리와 조금 다른 모습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빨갛고 앙증맞게 생긴 툭툭이는 언제봐도 재밋다. 호기심에 한번 타보고 싶기는 하지만 사실 무척 불편할 듯 하다. 좁고 무척 더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길가에 나무를 잔뜩 쌓아놓고 있는 이곳은 아마도 제재소쯤 되는 모양이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구경한 길가의 과일 상점이다. 즉석에서 코코넛즙을 마실 수 있게 해 준다. 바나나도 주렁주렁 걸어..
알루 비하라 사원을 나서서 캔디로 가는 길~ 면벽을 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현지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알루 비하라 사원을 배경으로 담아본 기념 사진이다. 사원 입구의 건물들 모습이다. 내미는 손을 왜 그냥 외면하고 가시나요~? 알루 비하라 사원 입구의 기념품점 모습이다. 알루 비하라 사원을 나서서 캔디로 가는 중이다. 건물 외부에 무수히 많은 신들을 모셔놓은 힌두 사원도 스쳐 지나간다. 제법 번화가처럼 보이는 거리의 뒷편에는 건물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리랑카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소도시들은 대개 도로 주변에 거의 모든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다.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은 무척 혼잡스럽기만한데 2차선으로 되어 있는 곳은 그나마 규모가 조금 큰 지방 소도시쯤 되는 듯 했다. 2차선으로 되어 있는 도로의 중앙선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자유..
최초의 불교 경전 성문화 작업이 이루어진 알루 비하라 사원 Alu Vihara 알루 비하라의 석굴 사원 입구 모습이다. 알루 비하라 사원은 캔디에서 담불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 마탈레 인근에 있다. 이 사원은 스리랑카에서 초기에 조성된 사원 중의 하나인데 불교를 받아들인 기원전 3세기 데바남피아 팃사왕 때 최초로 건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원래의 이름은 알루레나 Alu-lena 혹은 알로카 레나 Aloka lena였다는데 그 의미는 찬란히 빛나는 석굴이란 뜻으로 초기엔 동굴 사원만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찬란히 빛나는 사원이라는 이 사원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헌 중 하나가 이곳에서 문자화되었기 때문에 더욱 찬란 히 빛나는 사원이 되었는데 그 문헌은 부처님의 초기 말씀을 가장 근접하게 기술해 놓은 팔리어 삼장이다. 현재 이곳 알루 비하라에는 부다고사 스님..
스리랑카의 알루 비하라 사원 Alu Vihara으로 ~ 이게 코코아란다. 나무 아래 작은 박스 안에 절단된 열매를 놓아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후추도 볼 수 있었고~ 이건 빵나무인 모양이다. 농장 건물에 마련된 판매장에는 많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ㅎ 건물 밖에 놓인 물동이 안의 꽃이 예쁘다. 현지인들의 모습이다. 이 중에서 파란 바지를 입고 있는 친구가 우리 투어차량 기사다. 스파이스 농장을 나서서 다시 길을 떠난다. 그리고 도착한 사원 앞에서 본 모습들인데 작은 판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두 노인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기만 하다. 체스판인가~? 이동 판매소인데 이건 뭔가~? 아마도 복권쯤 되는 모양이다. 작은 바구니를 들고 꽃을 파는 아저씨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못해 심각한 느낌까지 준다~~ㅎ 꽃을 구매한 우리 ..
스리랑카의 폴론나루와를 나서서~ 호텔 현관 앞에서 떠나가는 투숙객들을 환송하는 여인들 모습이다. 이틀동안 머물렀던 호텔 내 모습을 다시 담아봤다. 한번도 이용해보지 못한 풀장이지만 기분은 한층 더 업시켜 주었다. 푸른 숲과 호수에 둘러싸여 운치도 있고 서비스도 좋았던 기억에 남는 호텔이다. 여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다음 목적지로 출발한다. 그리고 곧바로 시야에 들어오는 드넓은 호수~ 호텔로 들어오던 첫날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아슬아슬한 공포감을 주었던 호숫가 도로 모습이다. 그때는 도로가 상당부분 물에 잠겨 있었고 호수 물이 도로까지 넘실거렸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출과 함께 담아보았던 풍경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눈에 익숙해진 스리랑카의 전형적인 도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매번 길을 가다가 느끼는 점이지만 스리랑카의 대도시를..
스리랑카 폴론나루와의 갈 비하라 삼존불 사원 Gal Vihara~ 랑카 틸라카 사원 주변 모습들이다. 쿼드랭글과 왕궁터 내의 유적들이라서 많은 건물 잔해들이 있고 그 대부분이 기둥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형태다. 왕궁을 경계짓는 돌담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이끼가 두껍게 덮혀있고 주변의 무성한 나무들과 함께 원 선생들의 놀이터로 변해 있다. 줄기를 잔뜩 감싸고 있는 것들은 가지인지 뿌리인지~? 왕궁터를 나서면서 담아본 모습들이다. 쿼드랭글을 나서서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갈 비하라 사원이다. 폴론나루와 시대를 대표하는 불교유적인 갈 비하라 사원은 거대한 천연 화강암 바위에 네 기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사원인데 사원의 조성은 폴론나루와 시대의 파라쿠라마 바후 1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원의 가장 좌측에 조성되어 있는 이 불상의 높이는 약 4.6m로 불상이 앉아있는 ..
스리랑카 폴론나루와의 랑카 틸라카 사원 Lanka Tilaka~ 랑카 틸라카 사원 Lanka Tilaka~ 이 사원은 12세기 불심 깊은 파라쿠라마 바후 1세에 의해 자신과 왕족들의 기도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사원으로 폴론나루와 싱할라 왕조의 건축 기술이 모두 동원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랑카 틸라카 사원은 17m 높이의 벽돌로 쌓아올린 벽에 지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외벽과 내벽이 있어 이중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원의 외벽 모습이다. 외벽에는 수많은 스투코 Stucco로 조각된 장식들이 많이 남아 있어 사원 조성 당시의 화려함과 장엄함을 짐작케 한다. 정교한 조각들이 놀랍기만 하다. 사원의 입구 모습이다. 사원의 측면 모습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자~ 이 사원은 입구에서 보면 좁고 높게 보여 왜소하게 보이지만 측면의 길이가 더 길게 조성되어 ..